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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어스- 2013.6.12. 메가박스 신촌
10년쯤 전에 있었던 이야기 한토막. 사무실 골목 어귀에서 아이 하나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더랬다. 심부름이라도 나왔는지 뭔가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골목을 지나가려는데, 어느 집 대문 앞에서 개가 막 짖어대고 있는 것이다. 몸집도 그리 크지 않은 개였지만 하도 위세가 사납게 짖어대니 아이가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겁이 난 나머지 개 앞을 빨리 지나가려고 순간적으로 냅다 뛰려다 개가 달려들며 마구 짖으면 흠칫 하고 도로 제자리인 상황이 계속되는 걸 보고 있자니,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애한테 다가가서 살짝 귀뜸을 해 주었다. "얘, 짖고 있는 개 앞에선 뛰지 말고, 겁낼 필요 없으니까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렴. 여차하면 내가 봐 줄게."

하지만 아이한테는 당최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었는지, 여전히 관문(?)을 후다닥 통과하려는 몇 번의 시도가 이어졌다. 하긴 나도 짖는 개 앞에서 뛰지 말라는 얘길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 봐도 개가 짖을 때는 위협을 하거나 자기도 겁을 먹었기 때문일 테니까, 별안간 격하게 움직이면 개 역시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겠는가... 정도 예상하는 게 고작이다. 결국 그 아이는 겁먹은 표정을 끝내 털어내지 못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조용히 걸어서 으르렁거리는 개 앞(이래봐야 좀 먼 발치였지만)을 지나쳐 제 갈 길을 갔다.

<애프터 어스>를 보고 예전의 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떠올린 건, <애프터 어스>가 딱 요정도 레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난 이 영화가 대체 왜 이런 거창하고 진중한 분위기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을 먹었는지, 기획한 사람들한테 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예고편이니 홍보물이니 하는 걸 보면 마치 우연히 조난당한 부자가 '천년이 지나 완전히 야생화 된 지구'를 배경으로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거나 누구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낼 것 같은 분위기이건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아니올시다랄까.

솔직히 주인공 부자가 불시착한 행성이 굳이 지구일 필요조차 없었다. 영화의 주제 자체가 다분히 주인공 소년 키타이의 '성장'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의외로 공감대를 널리 형성할 수 있는 정도에 머물러 있건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마치 안 좋게 가려고 기를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애프터 어스>를 통해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가능성'이다. 영화는 모든 면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가능성, 배우들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을 가능성, 제딴엔 꽤 깊이 고민한 듯한 설정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을 가능성에 더해 차별화를 꾀했을 수 있었을 디자인을 위시한 비주얼의 가능성, 심지어는 한때 천재 감독의 출현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샤말란의 가능성까지 되새기게 할 정도. 그런데 모든 면에서 가능성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는 게 문제다.

사뭇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는 <애프터 어스>는 포스터며 홍보 문구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따금 명절 특선으로 보여주는 가족 단위의 모험영화나 특히 여름방학 시즌에 한시적으로 편성되어 꽤나 보는 애들 들뜨게 만들었던 '신나는 캠핑'류의 제목을 한 시리즈 영화 같은 것들을 연상시킨다. 반복하지만, 난 <애프터 어스>가 왜 이렇게 무게를 잡고 갔는지 모르겠다. 조금 가볍게, 아예 가족영화 내지는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오락물 정도를 목표로 삼았으면 꽤 좋은 영화가 나왔을 것 같은데.

앞에서 '안 좋게 가려고 기를 쓴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이 영화에 대한 안좋은 평가의 요소 중 하나가 '윌 스미스가 주연인 줄 알았는데, 별로 나오지도 않고 제이든 스미스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더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윌 스미스가 비중이 적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달리 보면 꽤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 밋밋하게 풀어낼 수 밖에 없는 캐릭터 설정을 굳이 고집해야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예컨대, 조난 상황에서 보호자 격인 아버지가 꼼짝못할 상황이 되어 어린 아들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두 사람이 원격으로 소통하는 것을 꽤나 감정적으로 잘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아버지란 사람이 '공포를 느낄 때 발산하는 페로몬을 감지해서 인간을 학살하는 괴물 앞에서도 공포를 억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설정이 되어 있으니 그게 윌 스미스여도 시종일관 대사 연기 죄다 건조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되면 감정적으로 격앙될 만한 여지는 어리고 겁 많은 아이에게 집중되게 마련인데, 역을 맡은 제이든 스미스는 독백에 가까운 대사와 연기를 통해 관객을 매료시키기엔 아직 역부족. 내가 보기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사실 이 영화에서 진짜 어색한 사람들은 등장 빈도도 높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이게 대체;) 연기 못하더라는 소리가 충분히 나올 법 하다.

거기에다 동물 캐릭터의 얼척없는 보은(!?)까지 실소를 자아내니, 나름 공을 들인 듯한 여러가지 요소들은 눈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보니까 기계보다는 플라스틱과 천이 주를 이루는 듯한 느낌 등 여타 SF물과 차별화를 꾀하려 애쓴 티가 역력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근간이나, 실제 극한상황에서 운용 가능한 여러 소도구 및 상황에 따라 상태가 변하는 의상 등의 컨셉에 꽤 공을 들인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여기 힘 쏟을 시간에 고개를 들어 이 작품 자체의 방향과 색깔을 살펴봤더라면 이렇게 애매한 작품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보고 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 거야?'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근래들어 이렇게까지 한결같은 혹평도 참 드문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고 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재미없진 않았다. 오히려 혹평에 비해선 좋게 보거나 마음에 든 부분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런 것들을 모조리 아쉬움이나 가능성의 범주에 묶어버린, 잘못된 기획 방향이 이 작품의 패착이 아닐까 한다. '부자의 조난일기'정도로 재미있게 풀 수 있었음직한 이야기를 무슨 대단한 비밀이 숨겨진 하드 SF같은 포장지를 씌워 내놓은 본 작품을 보면서, 최소한 한가지는 배웠다. 뭐가 됐든 탄력을 받거나 잘 진행된다고 생각될 때는, 엄청나게 큰 구멍이 빤히 보여도 못 보거나 아니면 보고도 은연중에 못본척 할 수 있다는 것. 나도 해본 적이 있는 실수고, 앞으로도 충분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 [전단지] 애프터 어스 (한국판)
by EST | 2013/06/13 01:29 | 영화관 2010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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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13/06/13 01: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나이브스 at 2013/06/13 08:00
예고편 분위기는 좋았는데 디테일한 내용은 별로이군요.
Commented by 天照帝 at 2013/06/13 08:12
듣자하니 윌 스미스가 원래 쓴 기본 플롯은 ‘평범한 현대인 부자가 캠핑 갔다가 사고를 당해 아버지는 차 안에 갇혀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아들이 구조를 요청하러 가는’ - 말씀하신 그대로 신나는 캠핑 + 소년 성장물 이었답니다. 근데 거기다가 나이트 샤말란이 생뚱맞게 SF를 끼얹어서...이하 생략.
Commented by EST at 2013/06/13 15:53
비공개// 그렇게 덕스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면 저같은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이브스// 네, 여러모로 '아깝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솔직히 관람을 권할 만한 작품은 아니에요.

天照帝// 어이쿠, 말씀대로라면 샤말란 감독은 당최 변호해줄 구석이 없겠군요. 어떤 분들은 대자본과 거물 배우 때문에 샤말란도 딱히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연출력으로 승부를 걸지 못한 게 아니냐라고 보시던데 그것도 아닌 셈이니...
Commented at 2013/06/13 16: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6/14 02:21
비공개 답글입니다.
Commented at 2013/06/14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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