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번은 아니지만, 종종 눈이 번쩍 뜨이는 이슈로 한번씩 구매욕에 활활 불을 붙이는 월간 모델 그래픽스. 6월호 특집인 '리얼로봇 제네레이션'이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를 수놓은 더그람과 바이팜을 본 순간 바로 구매를 확정짓고 광화문 B서점에 문의를 넣어 입고 다음날 방문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다 나갔다는 겁니다, 입고 당일에. 그래서 건너편 Y서점에 갔습니다. 없대요. 많이 들여놓는 책이 아니기도 하고 늘 와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제 다 사갔답니다. 이미 눈은 뒤집혀 있었던지라 여기저기 전화로 문의를 해 보니, 이런 류의 잡지들은 매 지점마다 일정수량 입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좀 유력한 매장 위주로 유통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 휴일에 일할 게 있어 사무실 나가는 참에 Y문고 강남점에 들러 전날 전화로 찜해놓은 마지막 한 권을 어찌어찌 손에 넣었습니다.
전의 제로센 건도 있긴 했지만 사실 이번같은 경우는 특집때문에 불티나게 팔렸다기보다는 전체 물량 자체가 적었다는 쪽이 맞지 싶습니다. 가장 재고를 넉넉히 확보하는 것으로 보이는 K서점이 리모델링 때문에 한시적으로 휴점 상태인 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을 난감하게 만든 셈이죠.
아무튼 그래서 이번 특집이 무엇이냐 하면, 앞서도 적었듯이 '리얼 로봇 제네레이션'이라는 제목 아래 왕년의 걸작 키트들의 작례를 실은 겁니다. 물론 그 근간을 이루는 건 모델구라 특유의 시선에 의한 시대적 고찰과 정리된 텍스트들입니다. 반다이의 건플라가 열어젖힌 리얼로봇 플라모델 시대에 다양한 업체들이 오만가지 시도를 통해 보여준 80년대 초중반을 모형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음반 자켓이 눈에 띄는 서두를 지나, 초반 작례는 이마이의 1/72 배트로이드 발키리, 반다이의 1/100 바이팜으로 시작합니다. 둘 다 일세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통해 나온 것들이고, 프로포션의 해석이나 당시의 기술적 한계를 빼고 보면 가히 걸작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제품들입니다. 물론 작례도 끝내줍니다.
흑백 페이지로 넘어가면서 리얼로봇 애니메이션 플라모델 붐에 관한 좌담회 기사 다음으론 반다이의 1/48 드럼로가 등장합니다. (오라배틀러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만큼 좋아하는 놈입니다만 아쉽게도 HG시대에 신제품이 나오는 건 결국 못 보고 말았지요.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던바인을 과연 '리얼로봇'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좀 의문입니다. <기갑계 가리안>같은 작품과 비교했을 때,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세계정세 등과도 연관된다는 면 때문에 달리 해석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 뒤로는 80년대 리얼로봇 애니메이션 프라모델 중에서도 시금석이라 할 만한 것들을 배출한 작품 11선이 실려있는데, <전설거신 이데온>, <태양의 이빨 더그람>, <육신합체 갓마즈>,
<전투메카 자붕글>, <성전사 던바인>, <크러셔 죠>,
<테크노폴리스 21C>, <초시공세기 오거스>, <특장기병 돌박>, <중전기 엘가임>, <초시공기사단 서던크로스>를 꼽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요즘도 비교적 활발하게 제품화가 진행되는 <기동전사 건담>이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장갑기병 보톰즈> 등은 일부러 배제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음에는 문제(?)의 오카 프로가 타카라의 1/48 솔틱을 가지고 톱질 칼질 플라판질을 통한 개조 방법을 선보이는데, 요는 전에 포스팅했던
< MSV 모델링 카탈로그 1/144+α>와 궤를 같이하는 기사입니다. 지금까지 구판 건플라를 갖고 했던 짓을, 다른 키트를 갖고 한 거죠. 역시나 '하루만에 이정도 했다'는 식으로 보통사람들 기죽이는 것도 여전합니다. 뒤이어 타카라 1/48 더그람의 어마어마한 작례로 특집기사는 마무리됩니다.
반다이를 위시한 많은 업체에서 앞다투어 여러 작품의 다양한 메카들을 제품화하던 리얼로봇의 시대 80년대에 대해 일말의 모형적 향수를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변인구도 많이 줄어든 데다 업체 쪽에서도 수지타산을 무시할 수 없는 요즘같은 때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별의 별 것들이 죄다 공산품으로 쏟아져나오던 시절이니만큼, 그 다양성은 물론이고 거기서 비롯된 시행착오며 가끔 나와주는 사고나 일탈에 가까운 걸작들에 대해 떠올려보면 괜히 살짝 아련한 생각도 드는군요. 대부분을 카피 해적판으로 접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느낌이 들 정도니 일본에서 그 시절을 실시간으로 접했던 플라모델 애호가들은 어떤 기분일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즐거운 소재와 함께 멋진 작례가 어우러진, 아주 마음에 드는 특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