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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을 상기한다.
도처에서 상식 이하의 발언이 쏟아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떠올린 오래된 기억은, 수세에 몰린 노태우정권을, 당시 총리 내정자였던 한 사람이 직접 튀김옷을 뒤집어쓰고 되살려낸 희대의 사건이다. 조선일보 메인에 실렸던 사진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패륜이라는 한국 최강의 역공 아이템 중 하나를 얻은 정권은 한순간에 형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장관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며 차고 때렸다는 그 행위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외대의 수치라며 정원식에게 공격을 가했던 그때 그 대학생들은, 이후의 정세를 보며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학생운동에 대해서 뭘 제대로 알기는커녕 간신히 대학 분위기에 적응이나 막 해가던 대학 1년생의 나조차 어르신들 앞에서 요즘 빨갱이 대학생놈들은 인륜도 모르고 어쩌고 하는 꾸지람을 듣기 바빴으니 저 일을 잊을 리 없다.

노상 분향소를 닭장차가 감싸줘서 아늑하다느니, 시청앞 광장은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생활만을 위해 열린다느니, 생전에 죽어라 물어뜯기 바빴던 사람이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 선동으로 이용하지 말라느니 하는 적반하장을 넘어 마침내는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이는 굳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 하지 말라는 '성경문구'까지 들려오는가 하면 신종 플루 발생으로 집회를 비롯한 다수인의 집합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방안도 모색한다는 지금, 문득 91년을 기억한다. 허탈감과 절망을 삼키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우없는 막말들. 성질급한 놈 하나만 사고쳐봐라 단숨에 박살내줄테니라는 비웃음이 들리는듯한 무수한 떡밥들. 읽고 듣는 것 만으로도 머리 뚜껑이 확확 열리는 이 도발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도발에 넘어가 주구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면, 웃는건 개 주인 뿐이다. 개 주인은 사실 개의 안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스로 목에 개줄을 걸 개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by EST | 2009/05/25 14:19 | 오늘의 잡상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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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직장인 at 2009/05/25 17:50
저도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고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사회분위기가 상당히 안좋았는데 정원식의 '한방'으로 노태우 정권은 역전의 기회를 잡았었죠. 말씀대로 80년대~90년대 초가 겹쳐 보이는 요즘입니다...
Commented by EST at 2009/05/25 19:41
직장인// 정말 한방이었죠. 저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아무리 분하고 화가 나도 성미 내키는대로 행동해선 절대 안된다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 지금 조문객을 막는 봉하마을의 일부 사람들이 심히 걱정됩니다. 벌써 그같은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여론몰이를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요.
Commented by fineblue at 2009/05/27 18:30
오랜만이구려. 저 사진도 오랜만이고. 근 20년 되어가는구료...
근데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직도 똑같은데를 돌고 있쏘.
Commented by EST at 2009/05/27 19:04
fineblue// 정말 오랜만이오. 잘 지내지? 정말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저런 상황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니 기분 참 엿같소그려.
언제 느긋하게 앉아 망할 놈들 안주삼아 쐬주나 한잔 합세다. 와이프랑 애들한테 안부전해주게나.
Commented by ghong at 2009/05/28 03:09
쥐새끼가 보낸 꽃다발 아작내는 사진 보믄서 젤 먼저 떠오른 잔상이 정원식 튀김사진였음. 아닌게 아니라 걱정 좀 되는게 사실.

경찰수사 흐리멍텅하게 끌면서 자살입네 타살입네 몰려다니는 것 놔두는 것도,
어디에 진짜 머리좋고 악한넘들이 모여서 짜놓은대로 끌려가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가끔은 또라이 패거리들이 단순한게 아니라 진짜 진짜 무섭고 야비한 넘들이 아닌가.
어수룩한 척하면서 몰아가는 그런...
결국은 우-하니 뜻대로 몰려다니는, 걍 무지몽매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좀비들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오십년이 넘도록 요모양 요꼴을 쳐하고 아직도 이따구 일들을 당하며 원통해하며 살고 있는게 아닌가...

슬픈건 다 제쳐놓고.
진짜 열받는게.
개 찌라시들 하는 짓을 보면서 열받으면서도,
의지할 곳이, 소식 들을 곳이, 세상 돌아가는 걸 알수 있는 곳이
결국 그 개 찌라시들밖에 없다는거.
그러니 개 찌라시들이 아직 살아버티고 있는 거겠지.
어찌 그리 악하고 못되고 저주받을 것들이 이리도 골고루 뭉쳐있는지...

Commented by EST at 2009/05/28 11:56
ghong//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처럼 실린 저 사진을 생각하면 좀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본말호도와 정세 역전의 카드로 쓰였고 사정없이 도리깨질이 이어졌다는 기억 한편으로, 그렇다고 저 행동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도 않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이럴때일수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거고...

또라이 패거리들이 단순한게 아니라 진짜 무섭고 야비하다는 데 동감. 그래서 가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볼 때 얼마나 무도한 협잡을 시도할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의 갯수가 굉장히 많다는 데서 새삼 흠칫 놀라기도 하고요.

노짱이 이렇게 가셔서 슬프요. 정치적인 공과는 둘째치고 퇴임 후의 모습은 정말 좋아했더랬소.
Commented at 2009/05/29 16: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EST at 2009/05/30 14:10
눈팅하다가// 어서오세요. 91년은 제가 대학생활을 시작한 때라, 딱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의식 같은 것이 별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제 글도 공정하게 쓰여졌다곤 못하겠습니다. 강경진압에서 분신으로 이어지는 학생들의 희생이, 저 사건 하나로 한순간에 애도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공안정국을 유도했던 형세의 역전으로 이어진 데 대한 느낌이랄까 하는 정도입니다만, 뭐, '그럼 저게 잘한 짓이냐!?'라고 한다면 제가 무슨 소릴 해도 제 좋을 대로 감싸고 도는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도 사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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