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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2009.5.12
요점부터 딱 잘라 말하자면, 일단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꽤 볼만한 영화다. 감독이 맥지라는 얘길 듣고 기대치를 억눌렀던 탓도 있긴 한데, 부분부분 특기할 만한 점들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론 어정쩡함의 연속이었던 3편에 비해서는 훨씬 좋았다. 생각해보니, 난 아직 3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앞부분 따로 중간부분 따로 뒷부분 따로 또 어딘가 따로 하는 식으로 누더기처럼 부분부분 본 걸 이어서 한편으로 인지하고 있을 뿐이지. 제법 볼만한 오락영화의 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감상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3편이 실망스러웠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1,2편에 맞춘 눈높이라는게 꽤나 넘기 힘든 벽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전작들이 지나치게 훌륭했다는 건, 보는 사람은 물론이고 만드는 사람에겐 굉장한 부담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난무하는 영화들이 득실거리는 요즘에 와서 생각해 봐도 1편에 등장했던 불사신 터미네이터는 여전히 더할나위없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고, 영화 시각효과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히 일대 전환점이었다 해도 무방할 2편은 그 시각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일말의 여지가 없는 타임 패러독스의 순환을 완벽하게 짜맞췄던 전작에서 기막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짠한 감동까지 불러일으켰으니 말할 것도 없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과감하게 시대 배경을 미래로 옮겨서, 전작들을 보면서 '와, 이걸로 영화 한편 만들면 진짜 끝내주겠다'라고 내심 한번씩은 생각했을 법한, 기계와 인간의 전쟁을 다룬다. 3편에서 이미 어딘지 어긋난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타임 패러독스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폐허가 된 지구를 무대로 벌어지는 기계들의 압도적인 압박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저항에 초점을 맞추되, 이번에는 인간과 기계가 한 몸을 이룬 캐릭터인 마커스를 등장시킨 것은 나름대로 괜찮은 시도였다. 다만 타임 패러독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기 때문에 어딘지 시나리오가 좀 헐거워진 감도 있지만.

아예 화끈하게 막 나가버린다면 또다른 장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또 완전히 무시하는 순간 더이상 <터미네이터>가 아니라는 아이러니에 말려든다. 그건 영화가 <터미네이터>가 되려면 과연 어떤 것들을 취하고 또 버리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지 감독은 그저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외형을 한 기계인간이 그럴싸하게 나오는 것으로만 <터미네이터>가 성립되는 건 아니라는 것 까지는 파악을 한 듯 하지만, 1편이나 2편처럼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미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감독은 액션 연출의 장점과 <터미네이터>이기 때문에 가능한 물량공세를 통해서, 현란한 액션 장면과 새로운 메카 등을 동원하면서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기계 측의 압도적인 무력이 중량감과 속도감을 가지고 멋지게 연출된 점은 특기할 만 하다. 특히 인간을 사냥하는 거대 로봇의 경우 특유의 '쩌정' 하고 울리는 소리가 극장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인데 그 사운드 디자인이 또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다만 한편으론 아쉬운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터미네이터>를 보면서 다른 작품의 그림자를 떠올려야 한다는 게 어딘지 묘한 상황이라서 그렇다. 전대미문의 비주얼을 만들어내고 온갖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던 <터미네이터>임을 생각해보면, 화면을 보며 <트랜스포머>를 연상하게 된다는 게 어딘지 씁쓸하달까.

캐릭터들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정도. 어떻게 하면 에드워드 펄롱이 자라서 저렇게 되느냐는 불평을 자아냈던 3편의 닉 스탈이 어느새 크리스찬 베일이 되어 있는 건 좀 요상한 일이지만, 그같은 갭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원했던 존 코너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고편을 통해서 이미 그 존재가 익히 알려진 마커스의 캐릭터나 아직 애송이 티를 벗지 못한 카일 리스도 적절하긴 했는데, 배우들의 호연에 비해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살짝 허술한 게 아쉽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어딘지 존재감에 비해 좀 어정쩡한 감이 없지 않고, 저항군 수뇌부로 등장한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굉장히 반갑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살짝 평이한 편이고, 결말 부분에 이르면 나름대로 인상적인 결말을 만들고 싶었던 어떤 압박감도 살짝 느껴진다. 사전에 유출이 되어 한번 수정했다는 결말에 대해 들었는데, 개인적으론 그쪽으로 갔다면 훨씬 더 비장한 느낌은 강했을거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존 코너와 카일 리스의 연결고리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듯한 전개를 보다 보면, 아마 그렇게까지 할 엄두는 애시당초 못 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확실한 결말을 내지 않은 마무리를 보건대 아마 이번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분명히 5편도 만들어질 것이다. 큰 줄기가 어긋나면 마치 세상이 확 뒤바뀔 것만 같았던 타임 패러독스의 강박을 다소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음 편 쯤에선 인상적인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적어도 실망스럽진 않았다. 시사회에는 당첨되지 못했지만, 당첨된 친구 L군 덕분에 건대 롯데시네마의 큰 화면으로 즐겁게 감상했다.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린다.

-[전단지]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일본/한국판)
by EST_ | 2009/05/13 11:53 | 영화관 2000 | 트랙백(3)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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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드림노트2☆ at 2009/05/13 13:19

제목 :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의 하이드로봇 군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리고 있는 저항군. 부대의 지휘관이자 미래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는 존 코너는 저항군 사령부에서 로봇들을 제어할 수 있는 특수한 신호를 개발한 것을 알고 테스트 작전에 자원한다. 한편 저항군 LA지부를 벙어리 여동생을 데리고 혼자 지키고 있던 카일 리스는 마커스라는 수수께끼 여행자와 동행하였다가 스카이넷의 정찰기에 납치당하는데... '닭기사' 크리스천 베일을 내세워 제작된 네 번째 터미네이터.......more

Tracked from Dark Side of.. at 2009/05/22 14:49

제목 : 과연 구원받았나? 터미네이터 4
1991년, "심판의 날"이 6년 후 어떻게 도래하는지 사람들에게 예견되었을 때 '일부' SF 팬들과 메카 마니아들은 영화의 내용보다도 도입부의 전쟁 묘사에 관심을 보였다. 섬광을 토하는 플라즈마 라이플과 그것을 든 백은색 엔도스켈레톤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덮은 헌터킬러들. 그들은 -그리고 나는- 그 매력적인 기계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도입부의 3분여에 불과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미래의 전쟁이 어떠한 것인지 저마다 상상하고 또 재현했다. ......more

Tracked from [허가영업소] 양계장 at 2009/05/25 23:24

제목 : 터미네이터 4 보고 왔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재밌습니다. 볼 만해요. 어쨌든 찌질한 블록버스터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터미네이터 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는, 음 분명 논란이 있을 수 있겠네요. 전작들로부터 따온 메카와 몇가지 세계관 설정을 제외하면 이전 터미네이터 들과는 장르부터가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솔직히 어떤 다른 이름의 미래전쟁 SF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별 상관 없을 내용들이니까요. 1, 2, 그리고 적지만 3......more

Commented by 렉스 at 2009/05/13 12:01
예고편에 나온 하이드로봇(물에서 촐랑거리는 그 촉수들)을 보고 [매트릭스]도 떠오르더군요.

학생 시절 [매트릭스](+ 애니매트릭스)를 보고 [터미네이터]와 구분하기 위해
매트릭스:터미네이터 = 디지털기호:육체성
으로 구분했는데, 이젠 두 세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건 저에게 좀 슬픈 이야기에요. 흑.

분명히 하베스터가 거대한 인간형 유닛인 건 [트랜스포머]의 대항마 역할이었겠죠. 굳이 인간형을 한 건 아마도...역시...(흑)
Commented by EST_ at 2009/05/13 12:14
렉스// 렉스님 덧글에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사실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이나 당대의 비주얼이라 할 만한 스타일을 일찌감치 확립한 작품들인데, 그 후속작에서 다른 작품들의 그림자를 엿본다는 게 한편으론 좀 씁쓸했달까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5/13 13:19
어라, 저도 건대에서 봤는데...
Commented by EST_ at 2009/05/13 13:23
rumic71// 어라, 저랑 같은 시간에 계셨군요? 전 6관에서 봤습니다. 시사회를 한군데서만 하진 않았던 것 같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5/13 15:20
6관 O열에 있었습니다. 안을 둘러보기라도 할 걸 그랬군요.
Commented by copacetic at 2009/05/13 14:22
저는 터미네이터 3 좋았는데.. 가끔은 무식한 액션이 좋더군요 ^^;;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9/05/13 14:24
2의 존 코너는 양아치였고 3의 존 코너는 노무자 신세니깐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3의 핵심 포인트는 운명(역사)을 바꾸겠다는데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어떻게 보면 미래전쟁 시리즈로의 길을 터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피스이즈 at 2009/05/13 19:31
이 글을 보고나니까 더욱 보고싶어지네요.
휴가나가면 봐야겠어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나올때마다 참 재밌어서 그런 부분은 조금 기대하고 봐도 되려나요
Commented by EST_ at 2009/05/14 01:27
copacetic// 위에 적으면서 꽤나 폄하한 주제에 이런 소릴 하기도 좀 무엇합니다만... 사실 3편이 그리 후진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게 <터미네이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까이는 거겠죠;

계란소년// 여성형 터미네이터의 등장과, 말씀하신 '새로운 길을 터놓은 점'이 3편의 장점이겠지요. 3편은 확실히 좀 뭐랄지, 전작들의 위풍당당한 업적에 굉장히 짓눌린 감이 있어요.

피스이즈// 오왓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터미네이터... 나쁘진 않았는데 전 이번에 스타트렉에 제대로 걸려서 말입니다. 제 생각에 TF랑 UP이 어지간히 끝장내주지 않으면 올 여름은 그냥 스타트렉으로 홀라당 넘어가 버릴 것 같아요. 벌써 두번 봤어요 흑흑.
Commented by スナヲ at 2009/05/18 02:21
뭐랄까. 제 개인적으로 3편은 `터미네이터 다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는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가 겉돌고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뭐랄까...뭔가가 쏙 빠졌다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달까요.

보 면서 들었던 또다른 생각은 `아 그냥 이것도 2탄에서 끝냈어야했어' 라는 매트릭스를 감상하던 시절 떠올렸던 감상의 되풀이었습니다. 억지로 잡아늘린 스토리를 위태롭게 붙잡느니 명작으로서 고이고이 간직하는것이 더 나았을 법 했겠지만...4편의 평가가 그래도 전작보다는 `나름' 괜찮다는 평이 들려오니 이 생각이 한 반정도는 틀렸다고 봐야겠군요 'ㅂ'; 어쨌든 다음주에 개봉을 시작하면 짬을 내서 올 한해 최고의 블록버스터 중 하나인 요녀석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Commented by EST_ at 2009/05/18 10:52
スナヲ// 말씀하신 대로 '터미네이터다웠다'라는 게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 정체성을 타임 패러독스의 완벽한 순환에서 찾을지, 불사신 추적자를 피해 계속 쫓기는 절박한 서스펜스에서 찾을지, 아니면 기계가 사람을 사냥하는 어두운 미래의 모습에서 찾을지... 3편은 분명 터미네이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선 전작들처럼 자기만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1,2편의 이미지를 적당히 섞었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꽤 괜찮은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작품이 된 게 아닌가 해요.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 3편보다 좋다고 하는 건, 4편만의 색깔이 확실히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로 배경을 확 옮겨버린 건 머리 아주 잘 쓴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터미네이터는 2부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 작품이 이미 완벽한 순환고리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사실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1편 하나만을 칠 수도 있겠습니다만, 혁명적인 만듦새나 완벽한 속편이라는 면에서 2편을 떼고 터미네이터를 논한다는 건 제겐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Commented by スナヲ at 2009/05/18 15:11
역시 대중들에게 `터미네이터' 하면 1탄보다는 2탄을 제일 먼저 떠올릴테니까요 ^^; 저도 솔직히 1탄의 주지사님보다는 2탄에서 미니건을 들고 짭새(...)들을 도륙하시는(?) 모습이 더 기억에 생상하네요 'ㅂ';;

...아니 그 이전에 딴 사람들은 용광로 속으로 빠지면서 썸즈업을 날리는 장면을 더 많이 기억할텐데 저만 왜 이런것만 기억나는걸까요_-;;;
Commented by EST at 2009/05/19 15:18
スナヲ// 아니, 썸즈 업은 누구라도 떠올릴 겁니다. 그만큼 강한 장면이었거든요. 오죽하면 십수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광고에도 나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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