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다녀왔습니다. 행사 기획과 진행에 평소 인연이 있는 상출판사(상그라픽아트)가 관여하기도 했고, 자주 가보진 못했지만 그림책과 관련해서는 좋은 전시를 적잖이 열었던 성곡미술관인지라 이래저래 관심이 있었던 참입니다. 때마침 날씨가 좀 풀려 춥지도 않았고 하늘도 화창한 날이라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엔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이었어요. 이번 행사는 응모를 통해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국내외 그림책 100선과 50인 작가의 작품 전시, 그리고 초청작가전과 여러가지 행사 및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본관으로 들어가면 CJ그림책상에 선정된 100권의 그림책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더도 덜도 말고 그림책들이 놓여있고 장소도 아주 넓진 않기 때문에 처음엔 '어라?'싶은 느낌도 없진 않습니다만 어디까지나 행사의 일부일 뿐이거니와, 오히려 갖가지 그림책들을 조금씩 들여다보다 보면 은근히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곳이기도 합니다.
카메라에 담은 것들이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즉흥적인지라 따로 소개하긴 좀 무엇한데, 일단 CJ그림책상 신간그림책 부문 선정 100권의 면면은
이쪽 리스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느정도 사진촬영도 가능합니다. 왼쪽 하단의 책은 충치랄까, 치아를 망가뜨리는 세균들을 작은 괴물들처럼 그린 책인데 그런 시도는 일견 전형적으로 느껴질 법도 합니다만 그림과 구성이 상당히 재미있어서 눈길이 갑니다.
장식적이면서도 절제된 그라픽 요소들이 주를 이룬다고 나름대로 느낌을 받은 책들. 이란 일러스트레이터 Rashin Kheyrieh의 < The Young Man and the Shifty Tailor>라는 책(상단 왼쪽)과 인도의 일러스트레이터 Ram Urveti의 < The Night Life of Trees>라는 책(중간 오른쪽)은 표지만 봐도 참 탐이 나더군요.
무심코 펼쳐든 한 컷이 인상적이었던 책. 오스트레일리아의 Beatriz Martin Vidal의 < Secrets>라는 책입니다.
캐나다의 < Colors!>라는 책과 일본의 <くろいライオン(검은 사자)>라는 책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태희 작가의 <휘리리후 휘리리후>라는 책은 부제처럼 '바로 보고 거꾸로 보는' 구성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림책상상 5호에 인터뷰와 함께 작품이 실린 권윤덕 작가의 <일과 도구>도 묘한 분위기에 눈길이 갑니다.
전시 특성상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은지라 사람이 많이 몰리면 느긋하게 책들을 펼쳐보기에 좀 난감할 것 같습니다만, 사람이 좀 뜸할 만한 시간을 잘 맞춰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살펴볼만한 책들이 많습니다. 책 욕심 많은 사람들한텐 좀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고...
반대편 전시관으로 가면
CJ그림책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에 선정된 일러스트레이터 50명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쪽은 그림책 전시관보다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서 좀더 한가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세세한 질감까지 확실히 접할 수 있는 원화의 느낌도 좋고, 어떤 그림들은 실제 결과물이 생각보다 굉장히 작아서 '이걸 출판하려면 그림을 키워야 했을텐데 밀도 면에서 괜찮았을까'싶은 것들도 있고, 어떤 그림들은 최종결과물은 컴퓨터 작업인데 수작업 특유의 느낌을 깎아먹지 않는 등 흥미로운 면면으로 가득합니다.
정원을 지나 별관으로 향하면, 이번 행사의 초청작가로 선정된 데이빗 위즈너의 특별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작품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즈너 본인을 직접 초청할 계획이었다는데, 아쉽게도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정:
다녀갔답니다. 싸인회도 했답니다 어흐흐흑) 1층 전시관은 민들레 홀씨가 천정으로 날아오르는 듯한 디스플레이로 장식되었는데 아주 인상적입니다. 다만 흥미로운 디스플레이와는 별개로 저 민들레 줄기가 몇몇 전시물을 보는데 다소간 방해가 된다는 점이 좀 아쉬웠어요.
예전에 구입하려다 단골 서점에서 품절이 되어 아직 못 구한 <세 마리 돼지>입니다. 어떤 책이든 얼마나 인쇄를 잘 했든 원화를 보는 느낌은 사뭇 다르기 마련인데, 밀도가 높은 데이빗 위즈너 특유의 그림을 실제로 보니 여러모로 참 즐겁네요. 한쪽에는 그림책 구성을 위해 그렸을 거라 생각되는 콘티 같은 것들이 걸려있는데, 레이아웃이라곤 해도 꽤 완성도가 높습니다.
2층 전시관에 가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상한 화요일>을 모티브로 한 거대한 입체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색이 '페스티벌'이다보니 관람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몸소 그림책의 내용과 함께 추억을 남기게끔 배려한 기획이겠지요.
칼데콧 상 수상작인 <이상한 화요일>과
<시간 상자>는 물론이고 <허리케인>,
<1999년 6월 29일>등 책으로만 볼 수 있었던 그의 원화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쪽 벽면은 <자유 낙하>에 할애해서 작품 특유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인공 소년이 꾸는 꿈의 흐름을 그린 이 책은 책 전체의 그림이 이어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림책 전체를 옆으로 쭉 이어붙여 보여주면서 중간중간 원화를 전시하고, 바로 아래에는 책의 레이아웃 구성을 위한 러프 선화도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정말 대단하지요.
3층에 올라가면
<구름 공항>을 모티브로 한 듯한 갖가지 구름 형상의 조형물이 자리잡은 가운데, 한쪽 벽면을 통해 <이상한 화요일>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영상화가 된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예상 외로 작가의 그림을 잘 구현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IMDB의 작품 소개에서 이 작품의 면면을 볼 수 있는데, 엔드 크레딧을 보니 폴 매카트니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executive producer도 맡은 걸 보니 아무래도 제작 자체에 상당히 깊이 관여한 것 같구요.
큰 계획만 잡고 갔던지라 다소 치밀하게 관람하지 못하고 함께 보려던 볼로냐 그림책 원화전을 놓친 건 아쉬웠지만,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를 통한 즐거움은 손색이 없는 전시회였습니다. 아이들이 몰릴 공산이 크고 가끔 보호자들 중에 볼륨조절장치가 고장난 사람들이 있어서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전시 특성을 생각하면 그런걸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테니 언제 월차라도 내서 평일 즈음에 책과 그림에 코를 박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CJ 그림책 축제는 3월 1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