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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에 다녀왔습니다: 080630
요즘 세상이 하 수상해서 매일매일이 안타까운 나날들입니다만,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께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집전하신 시국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공식 집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신자 비신자 구분없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의 인원이 참석했고, 아마 미사 성제가 끝날 때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을 겁니다. 회사에 개인 용무가 있다고 양해를 얻을 수 있었던지라, 조금 일찍 퇴근해 미사에 참석했네요.

원래 6시부터 미사 시작 예정이었는데, 음향차가 검문에 걸렸다는 모양인지 도착이 지연되어 7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시청앞 광장은 때마침(?) 조경작업을 한다고 잔디를 까 놓고 금줄을 쳐놨던데 뭐 그정도 장난이면 애교로 봐줄 만 하니 상관없고.

사실 미사 시작하면서 "여러분 많이 외로우셨죠? 저희가 위로해 드리러 왔습니다"는 말씀 하나로 요약 가능한 오늘 미사에 대해, 제 부족한 어휘로 장황하게 뭔가 늘어놓을 계제는 아닌 듯 합니다만 "우리는 반찬 투정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말씀으로 사람들이 웃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공명심에 취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상황을 어지럽게 만든 위정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과 전의경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감싸는 눈물겨운 유머로 시종일관 진행된 미사는, "우리는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있는 북쪽이 아니라 주저앉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숭례문이 있는 남쪽으로 향합시다"라며 앞장서신 신부님들에 이어 수녀님들을 따라 촛불을 든 참가자들이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숭례문을 돌아 다시 시청 앞 광장에서 해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미사를 위해 기다리던 군중들 사이에서 정말 족히 한 십여년 만에 성당 형님도 뵙고, 절 성당으로 이끌었던 오랜 벗 LINK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미사와 가두행진이 끝난 다음에는 학과 동기도 하나 만났구요. 미사 집전을 위해 제대를 향해 들어오시는 신부님들 가운데서 제가 사랑하는 친구인 요셉 신부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차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신부님들만 얼추 한 백여분이 넘게 오신 것 같았어요. 아마 사제서품식이나 수도회 서원식 정도가 아니면 이정도 숫자의 신부님들로부터 강복받는 기회는 좀처럼 없을 겁니다. 흥미로운 건 사제들이 입장하실 때 스님도 몇분 계셨다는 거... 아, 목사님도 몇분 계셨다는군요)

특히 남대문시장서부터 돌아올 때 까지 구호나 노래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 채 촛불을 밝히며 행진할 때가 좋았습니다. (제가 꿈꾸던 일이 현실에서 구현된 느낌이었달까요) 몇분 신부님들은 계속 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시고, 국민의 마음이 안정을 얻을 때까지 천막에서 곡기를 끊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신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천주교회 입장에선 참 미묘한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성향의 종교이다보니 때론 골치아픈 애물단지이기도 할 테지만 어떤 면에선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찌되었건 교회 차원에서 특정 정권의 정체성 자체를 향해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긴 할텐데, 분명 손을 놓고 목도할 수만은 없는 일들이 21세기에도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아무쪼록 단식에 들어가신 신부님들이 영육간에 건강을 해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성당에 다닌다 해서 오늘 미사를 두고 이래서 천주교가 월등히 뛰어나다든가 우린 뭔가 다르다며 으스댈 생각은 없습니다. 주일미사만 봉헌하고 있을 뿐이지 제 자신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엉터리 신자일 뿐더러, 오랜 가톨릭의 역사 안에서도 요즘 벌어지는 일들 이상으로 정/교의 야합이나 고여있는 물이 썩듯 부패와 광신으로 가득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거니와(있었던 일을 부인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다시 그런 암흑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죠), 어쩔 수 없겠지만 천주교 신자 중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빨갱이 취급하시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피로 얼룩진 주말이 지나고 자칫 증오와 분노로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진 않을까 우려스러웠던 때에 신부님들께서 정말 적절하게 미사로 함께해 주신 것이 그저 고맙고 기뻤습니다. (덤으로 쬐금 뿌듯해 해도 큰 흠은 안 되겠죠?) 낯선 사람들과 웃으며 나눴던 평화의 인사처럼, 세상에 아무쪼록 평화만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덧: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오늘 최고 압권은 신부님의 선창으로 구호를 연호할 때 나왔던 '누구누구는 뒷산에서 촛불구경만 했대~요!'라는 문구. ㅠㅁㅠb
by EST_ | 2008/07/01 00:22 | 반갑습니다 | 트랙백(7)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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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ion, In The.. at 2008/07/01 23:25

제목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비상시국미사에 다녀옴
개인적으로 불가지론자에 종교를 가지지 않고 있지만 이건 단순히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그래선지 종교, 종파를 초월해 스님 두분, 목사님 한 분도 사제단과 입장 행렬을 함께 하셨습니다(제가 본 것만 저렇단 얘긴데 스님이나 목사님이 더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이정도 파티는 갖춰줘야 진정한 의미에서 '구국'기도회 같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듯-_-)b 단지 어제 2시간 밖에 못잔데다 아점브런치 ......more

Tracked from Studioxga.net at 2008/07/02 03:43

제목 : 역사 속의 인물과 함께 역사의 한순간이 되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 김인국 신부님 그외 많은 정의 구현 사제단의 사제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그때 너무 즐겁게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가면 언제나 맛있는 게 있고 아름다운 수녀님들이 즐겁게 놀아주시고. 유치원 가는 걸 즐거워했습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도 그런 줄 알았지만 갔더니 받아쓰기만 줄창 시키고 그리 즐겁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more

Commented by 세바스찬 at 2008/07/01 00:26
무사히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_^ 멋진 신부님들이시네요.
Commented by EST_ at 2008/07/01 00:30
세바스찬// 감사합니다. 그래도 뭐... 포털 뉴스란 덧글들 보면 가관입니다. 정부(라 쓰고 한나라당과 기득권 세력이라고 읽는)에 반하는 사람들은 뭐가 됐던 빨갱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거든요.
Commented by 에바초호기 at 2008/07/01 00:39
아아..오늘 이런 일이 있었군요.생활이 바빠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던 터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저도 참가했었어야 하는거였는데 아쉽군요.무사히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Commented at 2008/07/01 00:4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7/01 00: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EST_ at 2008/07/01 01:34
에바초호기// 네, 저도 사실 여건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다녀왔지요. 마음 한편이 잠시나마 평화로워졌습니다.

비공개 1// 저도 미사만 꼬박꼬박 드릴 뿐이지 엉터리 신자인걸요. 어떤 종교든 교세를 확장하고 대세를 이루면 타락할 함정은 언제든 도사리고 있습니다만,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말씀하신 대로 그런 균형을 위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오늘 잔디를 엉덩이로 뭉개며 잘 자라라고 꼭꼭 눌러줬습니다.

비공개 2// 아닌게아니라 나중에 발견하고 수정했습니다. 으하하 대박 오타를 ㅠ ㅠ
Commented by Lacrima at 2008/07/01 01:48
저도 오늘 갔었는데, 정말 사제단분들 멋있었어요.. ;ㅂ; b
남대문가니까 "이명박이 태웠다!!"랑 "니돈으로 세워라!!" 라고도 외쳤었지요. 이때 막 웃었는데 ^^;
Commented by 에이프릴 at 2008/07/01 02:15
저도 정말 간만에 미사에 나간 것 같습니다.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긴적이 없으니 어둠을 이겨낼 때까지 촛불을 지키겠다는 말씀에 눈물이 그렁해지더군요. 비맞고 땀흘리며 시위할 때는 몰랐는데, 많이 외롭고 많이 무서웠나봅니다.
Commented by Loomis at 2008/07/01 02:44
후기를 읽어보니 큰 충돌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무쪼록 빛과 어둠에 대한 말씀처럼, 더 늦기 전에 세상이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ed by 혜진씨 at 2008/07/01 03:15
잘 봤습니다..정말 오늘 여러가지로 종교에대한 시선을 많이 바꾸게 되네요.
Commented by EST_ at 2008/07/01 03:41
Lacrima// 주말 내내 몰아친 피바람이 마음에 남긴 상처가 컸던지라, 그 어느때보다도 소중한 미사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에이프릴// 전경버스 너머로 도리깨질 하는 소리와 비명소리만 들으며 하릴없이 초만 태우다 온 저도 외롭고 무서웠는데, 비맞고 땀흘리며 시위하신 분들은 오죽했겠습니까. ㅠ ㅠ

Loomis// 큰 충돌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전에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만, 무슨 일이든 진실은 보려고 하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지친 전경들과 시민들이 함께 기대 앉아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나눠먹다 조금 후에는 격렬하게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지곤 하는 요즘인지라 안심만 되진 않습니다. 제가 너무 쩌든 걸까요. 더 늦기 전에 세상이 바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혜진씨// 감사합니다. 앞으로 스님들과 뜻있는 목사님들도 종교행사를 여신다니 사정이 되면 참석해 보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숨 죽이고 지냈던 신실한 개신교인들도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좀 더 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즘같이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이라면 신실한 신도들에겐 정말 오명과 치욕으로 점철된 하루하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Commented by 사이암 at 2008/07/01 04:00
말로 다 못할 미세한 분위기와 흐름까지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어둠이 짙어 마음이 무겁지만 한발짝이라도 내디딘 것 같아 오늘은 잠을 좀 이룰 수 있을 듯합니다. 사제님들이 앞장서셨다고 해서, 안면몰수하고 시민 패던 집단이 한번에 달라질 것 같진 않아서 여전히 마음이 무겁긴 합니다만 그래도 한발짝이 귀중하다고 마음을 달래봅니다.
Commented by loony at 2008/07/01 04:03
개인적으로 오늘 최고는 "어청수도 물러가라. 정몽준은 버스타라." 였습니다. (...)
Commented by 아돌군 at 2008/07/01 06:40
수고하셧습니다~ 웹에서 스님과 신부님이 손을 잡고 계신 것을 봤는데, 감동이 오더군요..
Commented by ZAKURER™ at 2008/07/01 13:01
종교라면 치를 떠는(^^;) 제 동생이 대신 참석했고(저는 웹 방송으로...), 나중에 말하길 "종교의 순기능을 처음 보았다."며 감동했더랍니다.
미사 집전하신 사제단 및 수도사 수녀님들, 참석하신 신자 및 비신자 모든 분들께 너무나 고맙다는 말 밖엔... T.T
Commented by EST_ at 2008/07/01 13:41
사이암// 어이쿠, 그냥 소소하고 간단하게 적은 단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석에 대한 감사라뇨, 제가 감사드릴 일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패독스런 것들에 대한 걱정은 여전합니다만 먹구름과 피비린내만 가득했던 주말을 넘어서 무언가 마음 가득 뿌듯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앞으로 길어질 시간들을, 좀 더 마음을 다잡은 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loony// 정몽준은 버스타라! 흐흐흐.

아돌군// 감사합니다. 영성체 중에 성체성가로 한 스님께서 '광야에서'를 청해주셔서 다함께 불렀습니다만 익히 아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감흥은 남다르더군요.

ZAKURER™// 사실 어느 종교든 그 교단이 교리처럼 아름답기만 한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그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가능성을 어제 엿볼 수 있었기에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저도 신부님들께 그저 감사드릴 뿐예요. ㅠ ㅠ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7/01 13:50
퇴근이 늦어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뒤늦게 행진에라도 참여할 것을 후회 막심입니다.
에스트님의 귀한 경험, 일부나마 마치 제 것인양 공유하렵니다. ^^
Commented by 조프로 at 2008/07/02 01:27
트랙백 사인을 보고 찾아 왔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add link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EST_ at 2008/07/02 03:28
glasmoon// 거칠고 투박한 후기인데, 저야말로 공유해 주신다면 더할나위없이 기쁘겠습니다^^

조프로// 어서오세요. 시간 될 때마다 때아닌(?) 평일미사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만, 사실은 이 광장 미사가 너무 길어지지 않길 바래야겠지요. 위정자들이 하루속히 이성을 찾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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