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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이 하 수상해서 매일매일이 안타까운 나날들입니다만,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께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집전하신 시국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공식 집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신자 비신자 구분없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의 인원이 참석했고, 아마 미사 성제가 끝날 때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을 겁니다. 회사에 개인 용무가 있다고 양해를 얻을 수 있었던지라, 조금 일찍 퇴근해 미사에 참석했네요.
원래 6시부터 미사 시작 예정이었는데, 음향차가 검문에 걸렸다는 모양인지 도착이 지연되어 7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시청앞 광장은 때마침(?) 조경작업을 한다고 잔디를 까 놓고 금줄을 쳐놨던데 뭐 그정도 장난이면 애교로 봐줄 만 하니 상관없고. 사실 미사 시작하면서 "여러분 많이 외로우셨죠? 저희가 위로해 드리러 왔습니다"는 말씀 하나로 요약 가능한 오늘 미사에 대해, 제 부족한 어휘로 장황하게 뭔가 늘어놓을 계제는 아닌 듯 합니다만 "우리는 반찬 투정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말씀으로 사람들이 웃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공명심에 취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상황을 어지럽게 만든 위정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과 전의경을 포함한 모든 국민을 감싸는 눈물겨운 유머로 시종일관 진행된 미사는, "우리는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있는 북쪽이 아니라 주저앉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숭례문이 있는 남쪽으로 향합시다"라며 앞장서신 신부님들에 이어 수녀님들을 따라 촛불을 든 참가자들이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숭례문을 돌아 다시 시청 앞 광장에서 해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미사를 위해 기다리던 군중들 사이에서 정말 족히 한 십여년 만에 성당 형님도 뵙고, 절 성당으로 이끌었던 오랜 벗 LINK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미사와 가두행진이 끝난 다음에는 학과 동기도 하나 만났구요. 미사 집전을 위해 제대를 향해 들어오시는 신부님들 가운데서 제가 사랑하는 친구인 요셉 신부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차마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신부님들만 얼추 한 백여분이 넘게 오신 것 같았어요. 아마 사제서품식이나 수도회 서원식 정도가 아니면 이정도 숫자의 신부님들로부터 강복받는 기회는 좀처럼 없을 겁니다. 흥미로운 건 사제들이 입장하실 때 스님도 몇분 계셨다는 거... 아, 목사님도 몇분 계셨다는군요) 특히 남대문시장서부터 돌아올 때 까지 구호나 노래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 채 촛불을 밝히며 행진할 때가 좋았습니다. (제가 꿈꾸던 일이 현실에서 구현된 느낌이었달까요) 몇분 신부님들은 계속 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시고, 국민의 마음이 안정을 얻을 때까지 천막에서 곡기를 끊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신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천주교회 입장에선 참 미묘한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성향의 종교이다보니 때론 골치아픈 애물단지이기도 할 테지만 어떤 면에선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찌되었건 교회 차원에서 특정 정권의 정체성 자체를 향해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긴 할텐데, 분명 손을 놓고 목도할 수만은 없는 일들이 21세기에도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아무쪼록 단식에 들어가신 신부님들이 영육간에 건강을 해치지 않길 바랍니다. 제가 성당에 다닌다 해서 오늘 미사를 두고 이래서 천주교가 월등히 뛰어나다든가 우린 뭔가 다르다며 으스댈 생각은 없습니다. 주일미사만 봉헌하고 있을 뿐이지 제 자신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엉터리 신자일 뿐더러, 오랜 가톨릭의 역사 안에서도 요즘 벌어지는 일들 이상으로 정/교의 야합이나 고여있는 물이 썩듯 부패와 광신으로 가득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거니와(있었던 일을 부인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다시 그런 암흑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죠), 어쩔 수 없겠지만 천주교 신자 중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을 빨갱이 취급하시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피로 얼룩진 주말이 지나고 자칫 증오와 분노로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진 않을까 우려스러웠던 때에 신부님들께서 정말 적절하게 미사로 함께해 주신 것이 그저 고맙고 기뻤습니다. (덤으로 쬐금 뿌듯해 해도 큰 흠은 안 되겠죠?) 낯선 사람들과 웃으며 나눴던 평화의 인사처럼, 세상에 아무쪼록 평화만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 덧: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오늘 최고 압권은 신부님의 선창으로 구호를 연호할 때 나왔던 '누구누구는 뒷산에서 촛불구경만 했대~요!'라는 문구. ㅠㅁㅠ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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