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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범죄자들에 맞서 싸우는 히어로들 중에서도 배트맨에게 갖는 애정(?)은 좀 남다른 구석이 있는데, 특히 SBS를 통해 방영되었던 <배트맨(BATMAN: The Animated Series-이하 TAS)>을 통해서 만나게 된 브루스 팀의 캐릭터와 그림 앞에선 속된말로 꿈뻑 넘어가는 편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희대의 광인들이 가득한 고담시의 악당들 중에서 단연 좋아하는 캐릭터를 손꼽으라면 할리 퀸을 떠올리는 것도 실은 그런 맥락이다. 조커의 여인으로 많이 알려진 캐릭터이지만 조커보다는 또다른 악당인 포이즌 아이비와 붙어 나올 때가 훨씬 좋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살면서 한번쯤 '내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거나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넘어갔다면 지금쯤 내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연한 일과 가벼운 만남이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든가 자신도 모르는 취향을 일깨우는 일도 분명 적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할리에게 있어선 아캄 어사일럼에서 조커와 만난 일이 바로 안좋은 쪽의 계기인 셈이다. 밑바닥에 있는 본성을 자각하고 스스로 광대 여인이 되어 '미스터 J'에게 충성을 다 하지만 무시당하기 일쑤. 배트맨을 완벽히 궁지로 몰아넣고 도마 위의 생선으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지만 그 댓가는 '배트맨을 해치우는 건 자신의 몫'이라며 조커가 가한 무서운 폭력이었다. 큰 상처를 입었지만 목숨을 건진 뒤 일견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인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했으나 머리맡에 놓인 꽃 한송이를 보고 순식간에 표정을 풀며 '천사(같은 사람)!'를 외치는 에피소드 < Mad love>의 마지막 장면은 오싹하기까지 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분명 태생부터 조커의 반쪽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울림이 그리 탐탁치 않았달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남몰래(?) 이쪽이 공식 커플이라고 여기며 공공연한 지지를 마다 않는 아이비와의 관계도 마냥 알콩달콩하냐하면 그건 아니다. 할리는 주로 사고를 치거나 멍청함(또는 산만함으로 보이는 광기)으로 일을 크게 만드는 편이며 아이비가 늘 면박을 주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여성 특유의 묘한 연대감 또는 보이지 않는 애정으로 엮여있는데다, 아이비와 일을 꾸밀 때가 훨씬 더 그럴듯하기도 하고 조커 때처럼 조수보다는 주역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듯 하다. TAS 에피소드 중에서도 '새로운 범죄의 여왕들'로 잠시나마 등극했던 때가 있었고. 이 책은 <할리와 아이비>라는 제목으로 원래 나왔던 이슈는 아니고 < The Bet>, < Harley & Ivy: Love on the Lam>이라는 단편이 함께 수록된 것인데, 입수 루트가 마땅찮아 포기하고 있던 브루스 팀의 < Harley & Ivy>의 세 이슈가 모두 들어있는지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낼름 구입해 버렸다. 다른 두 작품도 나름 흥미롭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브루스 팀의 책이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먼저 등장한 할리이니만큼 어떤 작가의 그림보다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고, 개인적으로 이 작가가 그리는 아이비를 가장 아름답게 여긴다. 오래된 핀업걸 일러스트같이 경박함을 풍기면서도 고혹스런 매력 또한 고스란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올해는 배트맨의 새 영화인 <다크 나이트>가 찾아온다.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의 조커만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될 새 영화도 그렇고, 팀 버튼의 배트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우리말 판도 나온다고 하니 예전에 <배트맨 비긴즈>를 기다리며 혼자 조용히 환영 준비를 했던 때처럼 남몰래 불타보는 것도 좋겠다. 실은 Loomis님이 덧글을 통해 새로 발매될 <버즈 오브 프레이> DVD에 <고담 걸즈> 전편이 수록된다는 정보를 주신 터라 생각지도 못했던 고민에 빠졌다.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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