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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릴 문답
몇달 전에 갈무리해 둔 문답인데, 출처를 잊어버렸습니다; 원 문답 작성하신 분은 misha님. 출처는 나중에 알아내는 대로 추가하겠습니다.
1. 가장 먼저, 당신의 이름은? (닉네임이라도 됩니다. 실명을 쓰셔도 안 말리겠습니다)
- EST입니다. 복학 후 대학 2학년이었던 해에 과제 진행을 위해 처음 천리안을 사용하면서부터 줄곧 이 닉네임을 쓰고 있지요.

2. 이처럼 설문에 참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설문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실마릴리온을 어떤 경로로 보셨습니까?
- <반지의 제왕> 극장 개봉 즈음에 선배로부터 책을 빌려서 접했습니다. 당시 우리말 판으론 유일했던 다솜의 <실마릴리온>이었는데, 꽤 오래 절판되었던 책입니다만 나중에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서 한번 재판이 되자마자 재빨리 구입도 했지요. 이후 오랜 시간을 두고 발간된 씨앗판 양장본과 최근의 개정판 모두 구입해서, 총 3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읽으면서 안 어려웠어요? 처음 실마릴리온을 접했을 때의 느낌이란?
- 머릿속에서 글을 비주얼로 변환시키기 어려웠던 도입 부분이 좀 괴로웠습니다. 발라들에 의한 가운데땅의 창조는 다분히 이미지적이잖아요? 처음 부분을 넘기니 진도는 그럭저럭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후 부분은 글 자체가 어려웠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며 계보 등을 중간중간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지요. 지금이야 이름은 익숙해졌다 해도 여전히 계보는 조금씩 헛갈립니다.

4. 이제 본격적인 분야로 들어가겠습니다. 실마릴리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하나만 골라주세요. (인간/엘프/마이아/오크/기타등등 안 가립니다~)
- 실마릴리온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격처럼 느껴져서, 한사람만 고른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 그래도 어떻게 해 볼까 싶어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역시 제겐 불가능한 일이예요.

5.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느라 애먹였을 분들을 위해 보너스. 두 번째 이상으로 좋아하는 인물들을 골라주세요. 이번엔 숫자 제한 없습니다.
- 여러명을 고르라니 맘놓고 적어봅니다.
먼저 울모와 키르단. 물의 속성을 가진 이들은 발라와 엘프라는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운데땅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왔다는 느낌 때문에 좋아해요.
모르고스와 일대일로 혈투를 벌여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히고 장렬히 최후를 마친 핑골핀. <실마릴리온>을 그냥 무심코 펴면 항상 이 대목을 읽고 있어요. 단신으로 모르도르에 들어가 마이드로스를 구해낸 핑곤도 좋습니다. 어둠 속의 작은 빛, 폐허 위에 핀 꽃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성격이 좀 마님 섬기는 머슴풍이라,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갈라드리엘 마님도 좋아합니다. 마님에 대한 파슨심은 이미 톨킨 백문백답을 통해 밝혔습니다만서도...
읽으면서 줄곧 연민을 자아냈던 니에노르에게도 애착이 가는데, 베렌이 지어준 니니엘이라는 이름도 가슴을 살짝 쥐어뜯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지요. 인물은 아니지만 만웨의 독수리들을 이끄는 소론도르도 좋아합니다.

6. 만웨와 바르다와 기타 등등 모든 발라의 이름을 걸고서 절대로 이놈만은 용서 못한다! 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싫은 사람은?
- 가운데땅의 모든 인물들이 제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저마다 역사가 흘러가게끔 움직였다는 점 때문에 딱히 용서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은 없습니다만(더군다나 일루바타르의 이름까지 걸고 미워할 정도까지야...), 이상하게 울팡이란 놈과 아르파라존한테는 일말의 정조차 가질 않네요. 전자는 그냥 싫고, 후자의 경우는 아칼라베스 자체를 왠지 좀 힘들게 읽었던 탓도 있습니다.

7. 실마릴리온에서 가장 지지하는 커플은 누구와 누구입니까? 종족/연령/성별/앞뒤 순서 구분없이 마음이 바라는 대로 골라주세요. 여럿 대셔도 됩니다.
- 핑곤과 마이드로스. "네가 잘라낸 이 손이 타들어가듯 고통스러울 때마다 격정에 휩싸이곤 해" (야)
- 베스트 오피셜 커플이라고 할 만한 베렌과 루시엔 또한 절대 넘어갈 수 없지요.
- 사실 백합 망상이 좀 끼어들어도 될만 한데 요정 마님들과 아가씨들을 놓곤 망상 펼치기가 그리 쉽지 않더군요. 핀두일라스와 니에노르를 커플로 엮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긴 했습니다. 두사람 모두 애처로운 최후를 맞이한지라 서로의 품 속에서(야) 위안을 받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버리고 싶었달까요. 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역시 투린은 가운데땅 최강 민폐인간.
- 에아렌딜과 엘윙 커플도 좋아해요. 수부와 물새라니!(꺄아)

8. 이제부터 당신의 실마릴리온 베스트를 선정해보겠습니다. 오랜 시대에 걸쳐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최강이라고 꼽는다면 이 사람이다! 싶은 상대는?
- 루시엔. 이건 뭐 딱히 설명할 도리가 없지 않겠어요? (웃음) 제게 최강은 갈라드리엘 마님. 요정 여왕님 특유의 품위와 카리스마가 단지 온실 속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헬카락세를 건너오신 분이라구요.

9. 이 세계에는 워낙 beauty가 난무합니다만. 그래도 당신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미인은? (성별불문)
- 오피셜로는 역시 루시엔이겠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미인은 역시 갈라 마님. 감히 머리카락을 받다니, 머리카락을 달라고 청하다니! 김리는 정말 파렴치한 난쟁이였어요!!!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야지. 김리 당신이 킹왕짱이야. 님 짱드셈.

10. 정말이지 고생하는 게 보기 안쓰러웠다, 싶은 인물은 있었는지요.
- 마이드로스. 제멋대로인 동생들 추스려 가며 참으로 고생 많이 했지요. 누가 페아노르 아들 아니랄까봐 이쪽도 교만하고 드센 성품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마지막엔 스스로 좀 해방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의든 타의든 운명에 떠밀린 것이든 더할나위없이 처연한 최후를 맞이한 걸 생각하니 더없이 안쓰럽습니다.

...앞으로 20문항!(클릭)


11. 친구 삼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라는 인물은 있습니까?
- 핀로드와 키르단.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과 한결같이 든든한 사람은 왠지 좋아요.

12. 조금은 진지해져 봅시다. 애인이나 짝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은?
- 어라, 전 지금까지 매우 진지했는데! 음... 니에노르 니니엘. 동정심이나 연민에서 비롯된 감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일생이 하도 기구해서 부족하나마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13. 싫어한다는 것과 조금 다르지만, 너무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 투린. 가운데땅 최강의 민폐 인간. 존재 자체만으로도 민폐. 아무튼 민폐. 민폐 주제에 성질도 더럽다. 흥흥흥.(그만해)
- 한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이글린도 추가. 어머니인 아레델이 죽지 않았다면 좀 괜찮은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까요?
- 사실 페아노르도 한대 때려주고 싶긴 해요. 위대한 인물이지만 너무 잘나면 좀 얄밉다구요. 세상에 아무리 불같은 사람이라지만 삶을 마치자마자 재가 되어 흩어지다니 원.

14. 이제부터 내용 파트로 넘어가겠습니다. 실마릴리온을 읽다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일들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앞에도 적었듯이 자연스레 펼쳐드는 곳 중 가장 빈도가 높은 부분은 핑골핀의 최후입니다. 놀도르 대왕 핑골핀의 마지막이지만 모르고스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대목이기도 하죠.
베렌과 루시엔의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에서까지도 계속 언급될만큼 <실마릴리온>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라 할 수 있겠구요, 이 문답 곳곳에 적어놓은 이런저런 일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15. 그래도 이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그런 일은 있나요?
- 멜리안이랑 싱골이랑 첫눈에 반한 장면이요. 사실 우스운 장면은 아닌데, 눈 맞고 잠시 숨이 멎어 첫마디 꺼낼때까지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는 장면 아닙니까.

16.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있다면.
- 핑곤의 노래에 화답하던 마이드로스의 희미한 노래.
- 그리고 두번 사랑했던 투린에게 작별을 고하는 니에노르의 최후. 니에노르의 삶은 정말이지 너무 기구했어요. 엉엉엉.

17. 당장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 순간이 있었습니까?
- 그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아칼라베스는 가운데땅의 시작과는 아주 다른 의미로 힘들었습니다. 글 자체도 좀 건조하잖아요.

18. 다 끝내셨습니까? 자, 그럼 이제부터 막나가겠습니다. 당신이 실마릴리온의 세계에 태어난다면 어떤 종족이 되고 싶습니까?
- 놀도르. (단호)
전 조금이라도 기럭지를 늘리고 싶어요.

19. 역사의 현장에 서 있고 싶다! 실마릴리온의 여러 큰 사건 중에 반드시 참여해서 구경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까?
- 정말 굉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은 가운데땅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만,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재미는 좀 없을 것 같고...
사실 가운데땅의 큰 역사 하나하나가 모두 직접 목도하고픈 장면들이라, 이것도 가장 좋은 사람 하나 골라라라는 요구만큼이나 어렵군요;

20. 슬픈 운명과 멸망이 가득한 실마릴리온의 역사. 그것이 숙명이라고 하지만 이것만은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었다... 라는 건 있습니까?
- 투린이야 죽건 말건 상관없는데 니에노르만은 좀 행복하게 해 주고 싶군요. 아니 이편이 차라리 행복이려나.
- 또, 아칼라베스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적었습니다만, 침몰 직전의 누메노르로 가서 타르미리엘을 구해내고 싶습니다. 묘하게 연민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21. 있을 건 다 있을 것 같은 실마릴리온 세계이지만, 이게 빠졌다. 이것만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라는 게 있습니까.
- 가운데땅은 부족함마저도 완벽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은 없습니다.
... 라고 할 줄 알았지요? 다소 억지로 좀 쥐어짜내 보자면, 그리스 신화의 아마존같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공동체나 국가 개념이 있었으면 좋았을걸이라는 희망사항이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니 참 생뚱맞고 안 어울리는 상상이긴 하군요.
사실 이런 괴망한 상상을 하는 건 다 톨킨 옹 탓이예요. 가운데땅은 다 좋은데 백합분이 태부족이거든요. 너무 부녀자 취향만 의식하신 거 아닙니까?

22. 슬슬 끝이 다 되었으니 본능에 충실해집시다. 한 사람을 보쌈해서 데려갈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하시렵니까?
- 아, 니에노르라니까. 물럿거라 투린! (퍽퍽)
- 갈라마님도 좋지만 보쌈은 그분께 너무나 격 떨어지는 처사라...

23. 보쌈해서 뭘 하시렵니까? (밥이라도 한 끼?)
- 뭘 하긴, 살림 차려야죠. (농담)
실은 가운데땅의 아름다운 숲을 거닐며 이야기 나누는 걸로 족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영겁의 세월은 거뜬하니까요. 산책길 간식은 렘바스면 충분.

24. 당신은 실마릴리온 선데이 지의 기자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광경포착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은밀한 곳에 숨어들었습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순간이 왔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떤 광경을 찍으셨나요?
- 경건한 가운데땅에 옐로우 페이퍼라니 제 직업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군요!
... 근데 사실 딴 맘만 먹으면 참 엄한 광경으로 넘쳐나는 곳이 또 가운데땅인지라;

25. 자, 당신이 실마릴리온 세계의 어떤 인물이 될 수 있다면, 누가 되어보고 싶나요. 아참, 무생물도 상관없습니다.
- 금강석 반지 네냐.

26. 25번과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어떤 일을 하시렵니까? 역시 무생물이라도...
- 왜 네냐겠습니까. 당연히 갈라마님 손가락에서 영원토록 머무르는 겁니다. 하아하아 학학학.(퍽퍽)

27. 당신에게 한 순간 전지전능한 힘이 주어졌다고 합시다. (그러니까 일루바타르 쯤의) 시공간을 초월해서 뭐든지, 단 한 가지만 뜻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 자, 일단 캐릭터 그대로 갖고 페러렐 월드 한번 시작해 봅시다. 딱!(손가락 튕기기)

28. 그럼 실마릴리온 팬아트(글, 그림 어느 것이나) 중에 이런 게 보고 싶다- 는 건 있으신가요?
- 와이티님의 가운데땅 동인지를 좀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유키 노부테루가 그린 실마릴리온 전 등장 인물 설정화. 바램인지 망상인지 공수표인진 모르겠지만 유키 노부테루를 본인 이름으로 바꿔도 무방함. (리퀘스트나 좀 어떻게 하시지요)

29. 실마릴리온을 쓰신 J.R.R. 톨킨 옹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멋진 세상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0. 여기까지 답하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실마릴리온이라는 이야기에 대한 당신의 느낌을 적어주시면 되겠습니다.
- 처음에 느낌 감정은 일단 놀라움이었어요. 어떤 나라나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뤘음직한 세계를 한 사람이 일궈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몇번 거듭해서 읽는 동안 아주 친숙해졌달까요. 사실 <실마릴리온>을 읽을 때마다 매번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 사람의, 한 가문의, 한 종족의, 한 세계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게 때론 아주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해요. 등장인물 이름이나 가계도 같은 건 여전히 헛갈리고 있기 때문에 친숙하다는 표현도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일견 지루하고 장황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문답 만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by EST_ | 2007/11/27 14:56 | 문답과 테스트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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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테시 at 2008/05/16 11:26
마에드로스와 핀곤......가슴아픈 커플이죠. 그들의 아버지, 페아노르와 핀골핀이 보여준 전설적인 반목을 생각해 볼 때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EST_ at 2008/05/18 00:03
테시// 마이드로스는 마지막도 좀 처연했어요. 남다른 역경을 극복하면서 한층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페아노르의 맹세가 안겨준 주박에선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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