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세계적인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영화판도 어느새 다섯번째에 접어들었다. 원작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출간된 2003년 말엽에는 이미 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과 타성이 한껏 궤도에 올라있던 참이었던지라, 나오자마자 순차적으로 구입해 가며 후다닥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원작에 대해 토로하자면 '역대 시리즈 중 가장 읽기 괴로웠다'는 게 사실이다. 해리 또래의 주변 인물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암울한 여운으로 끝난
에서부터 시작된 어두운 분위기가 시종일관 이야기를 지배하고, 당연히 그 기반에서 태어난 최신작 영화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역시 어둡고 음습하다. 그래서 실은 이번 영화가 대체 어떻게 태어날 지 저으기 궁금하면서 동시에 걱정도 좀 되었더랬다.
작가조차도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변화를 의식했는지 다소 급성장한 모습의 어두운 해리, 어찌된 셈인지 해리와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듯한 덤블도어, 닥쳐온 위기는 등한시한 채 세력 거머쥐기에 눈이 먼 마법부의 전횡, 그런 마법부를 등에 업고 호그와트를 장악한 채 학생들에겐 거의 새디스트에 가까운 체벌을 가하는 엄브릿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 등. 신나는 활극 같은 요소는 사실 눈에 잘 띄지 않고, 시종일관 침침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 분량이 다섯권씩이나 되니 결코 읽기가 녹록치 않았던데다, 원 소스가 그렇다 보니 영화 또한 만만찮게 괴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셈이다.
해서 왠지 상당히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막상 작품을 보니 생각보다 아주 괜찮았다. 소설을 아예 배제하고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도 해 보지만 이미 읽은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해 봐야 객관적이 되긴 곤란할 테고, 좀더 감정을 이입시키거나 주인공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 만한 소소한 정보들이 배제된 반면 거침없는 가지치기로 이야기는 잘 흘러가니 되려 스토리만 파악할 양이라면 영화판이 훨씬 깔끔할 지도 모른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의 해리는 속된 말로 찌질하다. 몸은 급하게 자라서 체격도 다부지게 되었지만 생활 환경은 비참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불안하다보니 짜증이 난다. 영화판에선 그런 느낌을 일부러 배제했는지 모르겠으나, 초반에 두들리와 시비가 붙는 장면에서도 실은 해리 쪽에서 먼저 건들거리며 집적거린 걸 보면, 작가는 말랑말랑한 생각으로 책장을 펼쳐든 사람에겐 다소 난감할 정도로 도입부부터 이미 독자들을 조금 괴롭힐 요량이었나보다.
이 작품엔 그런 식으로 주인공들의 칙칙한 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대부인 시리우스도 대자 사랑과는 별개로 의협심에 불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상당히 강퍅한 귀족가문의 겉도는 아들이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런 어두침침함이 은근히 이 시리즈에 매력을 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게 묘하다. 사실 해리가 지금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마냥 햇빛같은 미소를 머금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구는 착한 아이였다면 진작에 책장을 덮어버렸을 지도 모르니까. 어떤 의미에선 어려운 환경에서 이를 악물고 글을 썼던 작가의 과거가 상당부분 녹아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차츰 진지해지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역대 작품 중 가장 암울한 텍스트를 쥐고 전연령 가족 영화를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감독은 상당히 고민스러웠을 듯 한데, 아무래도 원작의 상당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에서 거의 챕터 단위로 페이지를 잡아먹던 이야기의 몇몇 부분들은 아예 싹 배제하고 간다든지, 컷을 아끼기 위한 효율적인 연출 등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아낼 수 있는 듯 했다.
또 한편으로는 후속작의 이야기가 이미 나와있다는 점을 잘 활용한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는 컷 같지만 중간중간 지니의 표정이나 행동 등에 살짝 액센트를 줄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히 추후 얼렁뚱땅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초 챙을 아주 효과적(?)으로 퇴장시킨 각색은, 오히려 희미해진 캐릭터에 약간의 존재감을 줌과 동시에 장면도 아낄 수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번 편의 감독인 데이빗 예이츠가 다음 편 감독을 이미 맡기로 했다는데, 그런 사실에 기인한 건지 전체적인 구성이 단순한 축약으로만 보이진 않고 다음 편까지 걸쳐 가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가지고 가장 짧은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야기의 축약 면에서는 전작인 <해리포터와 불의 잔>보다 낫다는 느낌이다. 전체 구성과 분위기 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 시점에서 시리즈 최고로 꼽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와 비견할 만 하다. 이렇다 할 만한 강력한 장면이 없다고 앞에 적긴 했지만, 이미 패턴이 익숙해져서 그렇지 중간중간 상당히 공들인 장면들이 꽤 눈을 즐겁게 해 주기도 하거니와, 지금껏 다소 밋밋하게 표현되었던 갖가지 마법 기술들이 역동적으로 표출되는 클라이막스 부분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잘 압축하고 잘 연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 아주 아쉬웠던 부분은 대부인 시리우스 블랙과의 유대에 관한 것인데, 정말 우울하기 짝이 없는 성장 과정에서 대부의 출현과 그 존재에 대한 의심과 확인의 반복,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기쁨이 좀 더 깊이 묘사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단순하지만 3편에서 시리우스가 허가서를 통해 대자 해리의 호그스미드 외출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장면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시킨 독자 입장에선 얼마나 흥겨웠는지 모른다. (실은 완성도가 높다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그 장면이 날아가서 어찌나 화가 났던지!) 이번 편에서도 시종일관 정보와는 차단된 채 갇혀 있다시피 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과 감정에 둘러싸인 대부의 묘한 유대를 발견하며 더할나위없는 애정을 느끼는 감정의 흐름 등에 좀더 공을 들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단순히 '대부가 죽었다'는 상황을 넘어서, 시리우스의 죽음은 해리가 현재의 어두운 싸움을 이겨낸 연후에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하나가, 미처 맛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셈이니까 말이다.
또 한가지는, 아주 개인적인 관점이지만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읽으면서 유일하고도 가장 멋졌던 위즐리 형제의 탈주 장면이다. 호그와트를 장악한 채
학교를 한국 스타일로 바꿔가며학생들의 숨통을 조이는 엄브릿지의 가학적인 강압에 유쾌하면서도 통쾌한 방법으로 복수하고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두 형제의 모습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소설을 읽으면서도 '이 부분은 나중에 영화에서 꼭 좀 제대로 묘사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영화에서도 상당히 호쾌하고 멋지게 연출은 되었지만, 두 사람에게 살짝 대사라도 좀 넣어주지 하는 정도의 아쉬움은 남는다. 사방에서 불꽃 모양의 폭죽이 폭발하는 가운데 혼비백산한 엄브릿지를 둘러싼 채 그동안 산더미처럼 붙여 왔던 공고문들이 일제히 깨지며 터지는 장면은 소설에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멋진 장면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상당한 호오가 엇갈리고 있는 주변 감상과 암울함의 극을 달리는 원작과는 상관 없이 꽤나 즐겁게 볼 수 있었다는 것. 지나친 축약으로 원작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데 대한 우려는 일단 접어도 괜찮을 것 같더라는 점과, 다소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잡고 앞으로의 방향도 살짝 넘겨짚을 수 있는 여지마저 숨겨둔 꽤 괜찮은 영화화였다는 것이다. 이제 한고비 또 넘긴 채 원작은 마지막 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고 영화는 두 편을 남겨놓고 있으니, 해리포터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 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다시금 증폭시켜 가며 기다릴 준비를 해야겠다. 사실 해리포터 시리즈는 단순히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시리즈를 둘러싼 모든 현상과 파생 매체, 그리고 팬들의 애정 등이 한데 뭉친 커다란 그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 헤르미온느 머리 뒤로 묶자고 한 사람 누구냐, 당신 정말 멋진 사람이야.
지금까지의 모습 중에 제일 예뻤다. 딸사랑 만세 허마이오니땅 하아하아하아.(퍽퍽퍽)
- 사실 시리우스 캐스팅 루머 돌던 때에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건 마이클 윈코트 같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게리 올드만이 시리우스 맡았다는 이야기 듣고 한편으론 실망도 했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싹 접기로 했다. 연출상 감정을 이입시킬 만한 여지만 잘 추스렸다면 낭비됐다는 느낌은 좀 덜했을텐데. 그나저나 대부나 대자나, 왜 둘이 함께 있으면 묘하게 불타는 아우라가 보이는 듯한 착각이...?;;;
- 조연들이 유난히 빛나는 작품이었다. 루나 러브굿은 이번 편 최고의 캐스팅. 어딘지 어깨 너머 저만치 다른 세상을 쳐다보는 듯한 표정이 완전히 캐릭터 그 자체였다. 엄브릿지는 소설판의 짜증을 어쩌면 그렇게 완벽하게 구체화시켜 주는지 사뭇 감탄했다. 뒤집어질 만큼 화끈하게 웃기진 않아도, 엄브릿지와 맥고나걸 교수의 계단 유머 같은 소소한 장면들은 엄브릿지 캐릭터가 주는 짜증의 와중에서도 꽤 재미있게 다가와서 긴장을 풀어준다. 생각해보니 엄브릿지가 유난히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루나와는 다른 의미로 딴 세상에 시선을 두고 있는 힘있는 존재를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대부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통스는 상상했던 이미지랑은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에 좀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호감 가는 캐릭터였다. 추후 활약을 기대해봄직 한데 이번엔 루핀조차도 거의 모습이 드러나질 않으니 함께 비중이 적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벨라트릭스는 딱 더도 말고 더도말고 광년이 수준인데, 갈수록 남편의 작품세계화 되어 가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스타일과 아주 잘 어울린다. 조연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시리즈를 다시 돌이켜보면 조역진 면면이 장난이 아니다. 시리즈 완결된 다음에 싹 정리하면 그걸로도 꽤 긴 얘기가 가능할 정도지 싶다.
- 실은 은근히 궁금했던 부모 세대 이야기는, 다소 약하긴 했지만 살짝이나마 다뤄 줘서 좋았다. 스네이프는 누가 뭐래도 병약미소년인데 제임스는 깡패도 아니고 거의 아주 얼굴에 독기가 가득한 것이... 아서라 해리, 그러길래 남의 마음 속은 함부로 들여다보는 게 아니란다. 그나저나 스네이프가 해리 마음 속을 파고들 때 지나간 장면 중에 초랑 키스하는 장면이라든지 초랑 키스하는 장면이라든지 초랑 키스하는 장면이라든지... 이제 약점을 잡았으니 그걸 빌미로 해리를 마음껏 농락하면 되는 건가!(야)
- 시각적인 만듦새도 꽤 괜찮아서, 눈이 즐거운 장면들이 꽤 있다. 첫 등장 때보다 한층 더 해골같은 느낌이 강조된 디멘터나 벨라트릭스의 탈옥 장면에서 나오는 아즈카반의 스케일감, 중간의 마법 훈련과 막판의 마법 싸움을 통해 보여지는 각종 마법 기술의 시각화 등등. 세스트랄의 경우는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것과 거의 일치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져서 살짝 놀랐다.
- 앞에도 적었듯이 초 챙과 관련된 부분의 각색은 꽤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동생이 '근데 초챙은 왜 나와서 초만 쳐?'라고 해서 뒤집어졌다. 뭐 물고 있었으면 뿜었을 듯.
- 지금껏 4편까지 동생과 함께 관람해 온 시리즈인 터라 무리해서라도 끝장을 보자고 개봉 즈음부터 시간 좀 내라고 찔러댔는데,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표를 구해 와서 무료로 관람했다.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가족행사(^^)의 맥락을 이어준 동생에게 감사를. 나중에 7편까지 다 함께 보고 나면 나름 기억에 남을 거야 동생님. 저녁 늦은 시간까지 애기 혼자 보며 부인을 빌려준 매제께도 감사. 나중에 제가 잠시 애 맡고 부부 동반으로 <라따뚜이>라도 보여드릴 터이니 그걸로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