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블랙코미디랑은 천상 안 맞는 모양이다. 비틀리고 꼬인 유머라고 해도 꽤나 웃음을 터뜨릴 만한 장면들이 적잖게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한순간도 웃을 수가 없었다. 히트쳤다고 하는 영화들 가운데서도 또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봤을 만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못 보고 넘어간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봉준호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도 그 중 하나인데, 다시 말하면 <괴물>은 처음 만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라는 이야기... 가 될 뻔 했지만, 실은 단편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지리멸렬>이라는 소품으로, 꽤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다. <괴물>은 <지리멸렬>과 어떤 의미에서 같은 맥락을 따르고 있다.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수족 역할을 하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극도의 불신. <괴물>의 진짜 괴물은 거구를 이끌고 사람을 습격하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괴물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 소시민의 절박한 외침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고 잘못된 정보로 대다수를 공포에 떨게 만들며 피해자를 세균 덩어리로 둔갑시키는 거대한 그 무언가가 뭉뚱그려진 덩어리라는 어떤 분의 감상에 적극 동감한다.
<괴물>은 내게, 영화 자체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과 기억까지 끌어내는 기이한 힘을 가진 영화였다. 많은 감상이나 평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정치적인 함의나 풍자에 관한 건 내가 아니라도 잘 정리해서 설명할 사람들이 충분히 많을테고,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더듬게 만드는 건 그만큼 피부를 통해 직접 느껴지는 생동감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은 늘상 나가서 바람을 쐬고 매번 지하철 창문을 통해 무심코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에 기인했을 터이다. 영화 홍보 일을 하는 친구에게 '가능하면 아무런 정보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봐라'라는 충고를 들으면서 '실은 CG 제작분을 봤는데, 괴물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등장하거든? 벌건 백주 대낮에 활개치고 다녀'라는 이야기를 덤으로 들었길래 망정이지, 그것마저 몰랐다면 괴물이 처음 나타나는 장면에선 정말 기겁을 할 뻔 했다. 무심코 옆을 보니 뭔가가 사람들을 마구 훑어대며 뛰어오고 있더라, 그거 정말 몸이 일단 싹 얼어붙는 광경 아닌가. (실은 그쯤에서 나오겠거니 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나타났을 때는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괴물은 뒷전이고 실체조차 파악이 안 되는 바이러스에 매달리는 미국(과 그에 휘둘리는 당국)의 모습을 놓고 보면 개연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진짜같이 다가오는 이유는, 당국의 조치니 대책이니 하는 그런 뉴스 너머의 이야기 말고 실제로 그런 일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우리같은 소시민들이 직접 당면하는 상황이며 환경을 디테일하게 살렸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일동' 명의의 화환이 보이는 합동 분향소-도대체 이 비일상적인 공간이 왜 이렇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건지-의 모습만 해도 그렇다. 고압적인 자세의 공무원들이 오히려 허둥대며 혼란을 유발하고 높은 분 오신다고 부산떠는 모습이나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통보에 '뭐야~'라며 불평의 소리가 터져나오는 병원 장면 같은 게,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겪게 될 것만 같은 리얼리티로 다가오는 터라, 영화의 외적인 완성도를 냉정히 보기는 커녕 처음부터 잔뜩 감정이입이 돼서 감독의 연출에 쥐였다 놓였다를 반복하게 된다.
솔직히 난 이 영화에서 제일 부담스러운 장면은 딸의 전화를 받았다고 울먹이며 허둥지둥 설명을 하는 강두 일가를 처절할 정도로 무시하는 경찰관의 모습이었는데-실은 두번때 관람 때는 일부러 그 장면에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이미 내가 저 상황이라면이라는 몰입 상태에서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봉고로 일가족이 탈출할 때 슬쩍 차에서 내려 경찰관을 도발하는 남일의 건들건들한 몸짓이나 차에서 나가떨어져 힘겹게 주차장 통로로 쫓아오는 그 경찰관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통쾌함을 느끼면서 그 몇배의 자괴감을 느끼는 건, 결국 소시민들이 그런 부조리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게 기껏해야 헉헉거리는 꼴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 일그러진 민중의 지팡이는 단순히 '경찰'이라는 특정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풍자한다기보다도, 살면서 수없이 마주치면서도 어찌 할 바 없이 속만 썩게 만드는 모든 경우 없는 존재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잘잘못과 상관없이 그저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라든가 안하무인인 사람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상대에 대해서는 무시의 시선을 감추지 않는 그런 사람들.
관객을 완전히 휘어잡는 <괴물>의 전반부는 그런 리얼함에 기인하고 있는데, 그 리얼함을 만들어내는 감독의 솜씨가 정말 예사롭지 않다. (<살인의 추억>에 비해서는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난 못봤으니 비교는 불가능하다) 매점에서 동전을 뺨에 붙인 채 자고 있는 강두(송강호 분)의 모습이나 뺨에서 떼어낸 동전을 거스름돈으로 받아가는 손님의 표정, 오징어를 구우면서 가스렌지를 켜지 못해 버벅대고 있자 다른 데를 보며 지나가던 희봉이 스위치를 눌러주는 모습, 탈출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잔뜩 주눅들은 걸음걸이로 총총총 차를 향해 걸어오는 남주(배두나 분)의 모습은 소소하지만 은근한 흡인력이 있었고, 담배를 소주 뚜껑에 비벼 끄는 모습이라든가 주전자 하나 분량의 물을 즉석면에 나누어가며 마지막 한방울까지 탈탈 떨어넣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청천벽력같은 상황에서도 졸음을 참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 같은 것이 너무나 그럴싸하면서도 마음 아리게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모습 외에도 실제 앵커가 등장하는 뉴스 장면이나 음성변조로 도주 환자에 대해 불리한 정보를 늘어놓는 간호사의 대사라든가 스포츠신문의 카피, 잘못된 뉴스화면 등은 실소를 자아내게 할 만한 장면이면서도 그럴듯 한 것이 불편할 정도다. 난 어찌어찌 한강변으로 다시 들어오는 데 성공한 박씨 일가가 매점에 들어와 몸을 누이는 장면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는데, 마치 상가집에서 손님을 다 치르고 잠깐 쉬기 위해 상복 차림으로 구석방에 눕는 것 같은 느낌이 확 느껴진달까. 그 와중에 자식들 다리 접어 곱게 누이고 배 채울 라면을 챙기는 건 또 아버지인지라 괜히 눈 한쪽이 시큰해지는 장면이다. 사실 <괴물>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봉 감독 인터뷰 중에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 너무나 강해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모성상은 배제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모습이 강하게 부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게 삼촌인지 오빤지도 헛갈리게 만드는(그래서 극중의 '아빠 맞어?'라는 현서의 대사는 참 재미있다) 철없는 아버지 강두보다도 역시 일가의 아버지인 희봉(변희봉 분)의 모습이 강렬한데, 위기상황에서 어찌어찌 상황을 타개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만들고 자식들까지 챙기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다. 죄다 어른들이면서도 그 와중에 졸고 앉았거나 이건 바가지고 저건 문제였네 하며 투덜거린다든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상황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조차 못하는 자식들은 그 와중에 서로 다투기도 하고. 그런 자식들을 놓고 서로 싸우면 안된다며 야단을 치거나 덜떨어진 강두를 싸고 도는 모습도 그렇고 분향소에 자빠져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도 말려올라간 딸의 운동복을 끌어내리는 모습 등은 정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 과연 이만한 디테일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머리 뚜껑이 열릴 정도로 열딱지가 나는 상황일텐데도 공무원이나 당국 등에 대해서는 일단 수고하십니다 풍으로 고개를 숙이는 부분에까지 이르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달려오는 괴물을 배경으로 순간 자신은 끝났구나라는 걸 감지한 듯한 표정으로 '어여 가~'라는 손짓을 천천히 날리던 희봉의 모습은 오래오래 또렷이 남을 것 같다. 내겐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사용법을 알려주다 화를 내고 나가던 장면만큼이나 강렬한 장면이었다. 분노한 표정으로 한방에 끝장을 보겠다며 괴물을 향해 걸어가는 표정부터 뒤이어 괴물이 꼬리로 희봉을 감아올려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데까지 이어지는 장면은 올해 가장 인상깊게 남을 영화 속 장면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인 강두는 굉장히 짜증이 나게 만들 수도 있는 캐릭터다. 강두를 무시하는 경찰이며 병원 관계자를 소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공권력...이라며 매도하기엔 사실 너무 어설픈 사람인지라, 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관객마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딸아이 손을 놓친 것도 그인데다 총알을 잘못 세어 빈 총을 희봉에게 건네준 것도 그다. 하지만 당장 죽을 것만 같이 고통스럽고 화급한 일이 생겨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먹은걸 소화하면 화장실에 간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강두의 모습이, 저런 덜떨어진 인간이 다 있나 하는 한심스런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은 건 그런 인간적인 이유에서일게다. 다소 판타지적인 연출이 돋보인 일가족의 식사 장면은 그런 인간적인 한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따뜻하면서도 가슴아픈 장면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삶은 계란을 먹여주고, 스타징가 소세지를 뜯어서 건네고 만두를 집어 주며 '우리만 이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어서 미안하다. 얼마나 춥고 무섭고 배고프니'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피눈물나는 식사장면이었다. 그렇게 모자란 아버지 강두는, 영화 내내 가장 억울하고 가장 가혹하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식 잃은 부모의 속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스크린 바깥까지 풍겨낸다.
이쯤 되면 이 정리되지 않은 감상문의 방향만큼이나 영화의 색깔이 분명해질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 <괴물>은 괴수영화라는 장르영화로 딱 잘라 구분짓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봉준호 영화에 괴물이 등장한 거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괴물과 주변 환경을 다루는 방법에서 지금까지 어떤 영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전율할만한 리얼리티를 확보한 것을 보면서(그건 우리나라 영화라는 점에도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이게 우리나라 괴수영화다'라고 어디 가서 마구 자랑해 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언론 플레이건 군중심리건 평론가들의 힘이건 뭐건 간에, 이런 소재를 가지고 만든 영화를 보며 영화 외적인 요소(예를 들어 저 장면은 너무 티가 나서 민망하다느니 괴물 움직이는 게 어째 저모양이라느니 하는 등의)에 일절 집착하지 않고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이 영화에 열렬한 박수를 보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괴물에 대해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거나 하는 영화도 아니다. 괴물의 비주얼은 정말 놀랄 만하며, 중요한 막판 클라이막스에서 약간 눈에 띄는 부분은 있지만 영화적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괴물의 낮 장면들은 정말 경악할 만한 연출이었고, 한강의 여러 환경을 이용한 괴물의 움직임은 당분간 한강 다리 밑을 유심히 관찰하게 만들지도 모를 만큼 교묘했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압도적인 살육자라기보다는 어딘가 이지러지고 한편으론 처량하게까지 보이는 외견-심지어는 큰 동작을 한번 취하고 나면 허우적거릴 정도로 못난 놈인데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맞닥뜨리면 도망칠 수 밖에 없는 포식자라는 게 참...-이 절묘하게 어그러져서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정말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얄미울 정도다. 다소 코믹한 듯 하지만 그 연기에서 페이소스를 힘있게 끌어낼 수 있는 송강호는 정말 대단한 배우다. 온몸이 구속된 상태에서 따지고 어르고 애원하다 결국 현서야 하며 오열을 터뜨리는 장면은 정말 보는 사람 속이 다 타들어갈 만 했다. 세상살이에 이런저런 편법을 사용할 줄도 알 만큼 연륜이 있지만 고지식한 일가의 아버지로 분한 변희봉의 연기는 별도의 수식어가 필요없을 만큼 최고다. 이분 오래오래 사시면서 좋은 연기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차남인 남일을 맡은 박해일 또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불평만 많은 대졸 백수의 모습을 정말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몇몇 장면은 일품이었다. '다 들었어. 네가 뻘짓했다며'라며 자기 형한테 두발차기를 날리는 장면이나 앞서 말했던 그 경찰관 도발하는 장면도 좋았는데, 특히 경찰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클립을 플러그에 꽃기 직전 낮은 음성으로 날리는 '좆까'가 아주 멋졌다.
막내인 양궁선수 남주를 연기한 배두나는, 극중에서 그리 역할이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런 스타일로 등장해서 그만한 느낌을 주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남주 역은 배두나 외엔 아무도 떠오르질 않으니 신기할 지경이다. 산발한 머리와 운동복 바람으로 한강변을 질주하며 조카를 찾으러 가는 장면은 보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는데, 뭐랄까 믿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면서 사실은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 같은 걸 동시에 들게 하더라. 중요한 시점에서 늘 머뭇거렸던 그녀가 마지막 한방을 쏘아 날리고 주저없이 조카를 향해 돌아서는 장면은, 뒷맛이 찜찜한 이 영화에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주인공 일가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실질적 여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강두의 딸 현서 역의 고아성도, 눈여겨 봐 둘 만한 연기를 보여줬다. 도입부의 일상 연기에선 조금 어색함이 엿보였으나 괴물에게 잡혀온 고립 상태에서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니라서 오히려 감정이입을 더욱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워보이면서도 쉽지 않은 연기를 소화해낸 듯 해서 대단하다. 그렇게 현서를 표현해냈기에 절박하게 딸을, 손녀를, 조카를 구해내려고 달려드는 박씨 일가의 모습이 와닿은 건지도 모른다. 박씨 일가가 그다지 좋은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지만 덜떨어진 아빠도 늙은 할아버지도 주정뱅이 인텔리 삼촌도 소심한 고모까지 위험을 마다않고 뛰어드는 건 다 귀여운 조카 때문이고, 일가의 또다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가족과 고립된 채인 현서의 감정이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어머니의 모습을 유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호해야 할 존재가 생기자 강해지는 어머니같은 모습을. 사실 현서는 꼭 좀 살려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진 않았었지만, 세주가 괴물의 보금자리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의 죽음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서는 정말로 세주를 지켜내고, 세주는 강두의 새로운 피붙이로 함께 외딴 매점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일찍 어떻게 되었다면 현서는 살 수도 있었을텐데...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 삼풍백화점 참사 때 '구조반이 찾아낸 여학생 시신이 아직 채 식지 않았더라'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또한번 묘하게 울화통이 터진다. 이 영화 정말 왜 이런다냐.
음악도 일단 귀에 들어오면 감정선을 자극하는데 제대로 한몫 하고 있다. 몇몇 장면들에선 그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뽕짝스러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니 감정과 장면의 불협화음같은 것이 굉장히 불편했는데, 엔드 크레딧을 보니 이병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실은 몇몇 뽕짝같은 음악들은 어어부 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그 느낌은 엔드 크레딧 초반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클래시컬한 분위기로 바뀌며 대미를 장식하는 괴물의 울음소리로 마무리되는 점이 아주 인상깊었다. '한강찬가'로 명명된 곡의 여러 변주 중에서도 방역차를 몰고 가족이 한강을 훑을 때 나오던 곡이 제일 좋았고 묘하게 눈 언저리를 시큰하게 만드는 멜로디였다.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연출되었던 병원 탈출 장면에 쓰인 곡이었는데,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면 일견 촌극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지만 실제로 그 일을 맞닥뜨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영원히 가슴에 묻어두고 가는 듯한 느낌을 연주 방식의 변화만으로도 두루 두루 느끼게 된달까. 사실 화면과 딱 맞는 음악이라는 건 영화의 OST에나 적용되는 일일지도 모르기에 그런 불협화음이 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내용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기억들까지 들쳐내는 잔인한 영화로 다가왔다라는 게 어쩌면 음악 때문이었던 것도 같은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이틀쯤 전 밤에 갑자기 혼미한 정신으로 알아듣지 못할 말씀을 하시며 몸에 연결된 호스들을 다 잡아 뽑으려 하시던 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젠 완력조차 별로 느껴지지 않는 아버지의 야윈 팔을 잡고 몸으로 몸을 누르면서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한 채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6인실의 TV에선 <가요무대>를 통해 '시골영감 처음가는 기차노리라~'가 뽕짝뽕짝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게 바로 현실의 OST가 아닐까. 눈내리는 외딴 매점이 암전되며 뽕짜라뽕짝 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사람을 놀리는 것도 같고 왠지 더 참담하게 만드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게 아마도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영화의 OST는 한가지 멜로디의 변주곡들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데, 박씨 가족이 병원에서 탈출할 때 나오는 뽕끼 가득한 곡이 '한강찬가', 방역차로 한강변을 애타게 찾을 때의 음악은 '현서야', 을씨년스러운 한강 매점의 라스트 씬에 나오는 음악은 '한강 찬가(트럼펫 버전)'이다.
공식 홈페이지의 OST 카테고리에서 들을 수 있다)
가족 둘을 앗아간 황당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의 일부로(또는 일종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남게 된다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액자에 끼워놓은 수배 전단을 통해 왠지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역시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이 영화의 정치적인 함의 등에 대해서는 그저 주변 장치로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 건 왜일까.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뉴스조차 발로 꺼 버리고 밥을 먹는 강두와 세주처럼, 그저 어쩔 수 없이 일상처럼 들이마시며 살고 있는 거대하고도 고질적인 문제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 실은 TV에서 나오는 거창한 이야기들은 실제 삶이랑은 별로 상관없는 문제라서 그런 건지도. TV에서 바이러스가 있네 없네 군대를 투입하네 어쩌네 하는 건 나랑은 동떨어진 이야기고, 실제론 괴물이 튀어나오면 어디론가 냅다 튀든지 아니면 싸워야 하는 상황인데 정책이니 대책이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언제 어두운 한강에서 또다시 나타날 지 모르는 괴물의 존재처럼, 언제 사람들을 내몰 지 모르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괴물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이 현현해서 실제로 그 앞에서 나뒹굴고 억울하게 몰리고 피해를 입는 소시민들은 여전히 할 바도 없이, 남아있는 상처를 잊으면서 또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언론에서 진상을 규명해주든 나라에서 발표를 해 주든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모르거나 아 그래 하고 넘어갈 뿐이고. 다시 통상의 검은 머리로 돌아간 강두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곁에는 늘 총이 있고, 눈 내리는 밤의 매점은 을씨년스럽고 음산해 보이기까지 한다. 괴물이 진짜 무서운 영화인 이유는 낯익은 일상 속에서 실제론 비상식적인 부조리가 숨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되새기게 해 주는 동시에 그런 문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는 걸 상기시켜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