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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5.9.2.필름포럼
몇년 전에 친구들로부터 굉장히 재미있고 꼭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사실은 영화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책도 구입해서 미리 예습도 해 두고 이래저래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그것도 꽤 됐다;), 여름 블록버스터들에 밀린 탓인지 아니면 이건 장사가 안 되겠다고 판단한 배급사들의 전횡인진 몰라도 아무튼 필름포럼 단관 개봉이라는 소식을 재차 접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늘 시간이 나서 마지막회 관람 성공.

종류를 막론하고 책에 대한 감상은 한동안 포스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감상을 적은 적이 없어서 지금에서야 슬쩍 흘리는 얘기지만, 시종일관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있는 작품을 즐겁게 읽은 것은 개인적으로 흔치 않은 경험이라 이래저래 영화에 대해서도 적잖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일단 간단하게 감상을 적자면,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박장대소를 하며 뒤집어질 만한 큰 웃음거리보다는 -아니, 클라이막스의 모 장면에선 손뼉을 치며 마구 웃긴 했다- 시종일관 어깨를 들썩이며 키들키들 볼 수 있는 다소 묘한 느낌도 가진 영화. 영화에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건 잘 알지만, <오픈 워터>를 마치 블록버스터처럼 포장해서 광고 때릴 힘으로 이 영화를 걸었으면 꽤 재미봤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적절한 비유는 아닌데 상상력이나 전개의 면면이 가히 마사루급이라 할 만한 장면들의 시각적인 표현도 아주 재미있었고, 낯익지는 않지만 왠지 정이 가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며 얼굴들도 마음에 들었고-특히 트릴리언이 아주 귀엽더라는 것도 덧붙여 둔다-, 예고편을 보면서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존 말코비치의 등장도 의외의 재미. 우울증에 걸린 로봇 마빈의 성격도 잘 표현된 것 같고, 은근히 완성도가 높은 시각효과도 매우 좋았으며 짐 헨슨 프로덕션에서 전담한 보곤 성인의 표현이나 디자인도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중간중간 등장하는 가이드북의 비주얼 표현이 백미로, 이걸 이용해서 마지막에 한번 더 웃겨준다. 그러니까 이 작품도 엔드 크레딧을 계속 봐야 하는 영화.

재미있게 본 것과는 별개로, <반지의 제왕>때와 비슷한 느낌도 있다. 그러니까, 피터 잭슨의 3부작을 보면서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래, 정말 잘 만들었고 3년동안 정말 즐거웠다. 그러니까 언제가 됐건 누가 원작에 아주 충실한 미니시리즈라도 좀 만들어 줘'라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던 기억 같은 거랄까.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직접 각색에 참여해서인지 상당히 과감한 수술을 해 가며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씁쓸한 유머라든가 황당함은 잘 살아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원작과는 많이 다르다. 체감분량으로만 치자면 원작의 몇% 정도나 표현됐다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에 나오는 촌철살인의 블랙유머는 둘째치고, 확실히 설명이 부족한 부분들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포드 프리펙트의 전자 엄지라든가 순수한 마음 호의 작동원리 같은 건 설명이 좀 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순수한 마음 호의 작동원리는 안내서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개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선 어찌된 셈인지 이 부분이 약간 잘렸다)

원작지상주의자들이 보면 헐리우드적으로 빤하게 타협한 작품이다라고 질타를 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지만(부에나비스타/ 터치스톤 영화라는 걸 감안하고 보면 더더욱 그럴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엔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다는 것이 내 감상이다. 감독도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가며 관객을 조롱하다시피하는 블랙코미디를 만들 수는 없었을테니 오히려 부담없이 보자면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5권까지 모두 읽고 나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속물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난 4권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펜처치와의 만남으로 인해 유일하게 아서가 행복했던 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5권의 전개나 대단원은 다소 당혹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냉소로 가득찬 작품 속에서 느낀 뭔가 애정어린 시선이 가장 큰 매력이긴 했지만:)

남들에게 권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 지는 알 수 없으나, 앞서도 썼듯이 꽤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모르긴해도 원작을 한번 더 읽고 나서라든가, 일단 영화를 두번째로 보게 된다면 분명 처음 볼 때와는 다른 구석구석의 코드들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있을거라는 것도 확실하고. 오랜만에 아주 말 그대로 '즐겁고 재미있게' 본 영화다. 단관 개봉한 영화를 일부러 찾아가서 본 것이니만큼 전단지라도 있었으면 내겐 의미있는 전리품이 되었을 텐데, 우리말 포스터나 전단지는 아예 제작을 하지 않은 듯(나중에 다른 분들 포스트를 보니 흑백 단면 전단지가 있었지만) 극장에 걸린 포스터에조차 출력한 한글 제목을 덧붙여놓은 등의 모습은 좀 아쉽다. 객석이 거의 2/3 정도 차 있었던 것은 다소 의외.


P.S. 1: 아침에 포스트를 다시 읽다가 작가 이름을 엉뚱하게 적어놓은 걸 발견해서 뜨악 하고 수정. 에드워드 애덤슨이 대체 누구람?;;;

P.S. 2: 표의 시간을 보면 18:30분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은 마지막회인 8시 30분 표를 예매한다는 것이 이렇게 된 듯. 표를 예매한 누님도, 표를 받아든 나도, 예매표를 출력해준 매표소 직원도, 표를 끊어준 입구의 직원도 모두 몰랐다. 들어가 앉은 다음에야 자리가 겹치는 걸 보고 뭐야 하며 확인하곤 4회 표라는 걸 알았다나. (하지만 교환이나 뭐 그럴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그냥 모른척 앞쪽 자리에 가서 보고 나왔다고 한다)

P.S. 3: 이 영화 보게 되면 뭔가 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걸 잊었는데, 그게 타월이라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다. 혹 한번 더 보러 갈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타월을 목에 걸고 가리라.
by EST_ | 2005/09/03 01:21 | 영화관 2000 | 트랙백(6) | 핑백(2)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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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5/09/03 01:36
으음, 상영 시간을 알아야 제대로 갈텐데 말이지요.
Commented by Sion at 2005/09/03 01:48
확실히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유쾌한 영화였지요>_<)b
Commented by DukeGray at 2005/09/03 01:49
월요일에 보러 갈 예정입니다~
Commented by 이안 at 2005/09/03 09:11
같은날 보셨군요. 저도 어제 마지막회 봤답니다. 8시 40분거요. 시간을 보니 제 앞에거 보신거 같군요. 너무 즐겁게 봤어요. 전 책쪽은 나쁘지 않게 본 기억만 있었는데 영화쪽이 더 맘에 들더군요~ 게다가 so long~ 음악이 머릿속에 맴도는 유쾌함이 있었어요.
Commented by EST_ at 2005/09/03 10:11
계란소년// 필름포럼 홈페이지에 가시면 나와있습니다. 다음주까진 할 것 같아요.

Sion// 오래전에 영국에선가 미니시리즈로 만든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라디오드라마도 있었다던데요^^

DukeGray// 즐거운 감상 되시길. 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이안// 하하, 실은 저도 어제 마지막회 봤답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다시 덧붙였어요) 저도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솔직히 읽고 나서 '아아 재미있었다~'라고만 하기엔 왠지 마음 한구석에 뭔가 남는 게 있었거든요. 영화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음악도 좋았고요.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5/09/03 12:29
인터넷에 보니 한글판 포스터와 영문판 포스터가 따로 있더군요.
근데 왜 저긴 한글 로고를 덧붙여놓은 구조로...;;
Commented by lchocobo at 2005/09/03 20:34
단관이더군요....흐음...;;
Commented by Loomis at 2005/09/03 23:47
보셨군요. 저는 DVD를 기다려야 하나 생각중이었습니다만, 주위에서 들려오는 호평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EST_ at 2005/09/03 23:55
계란소년// 한글판 포스터 작업을 해 놓고 인터넷에 뿌렸다가, 단관 개봉이 확정되자 인쇄는 안 한 거지 싶습니다. 그보다 다른 블로그에서 전단지를 봤는데 그게 정말 충격이더군요.

lchocobo// 그래서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마저 느껴졌습니다.

Loomis// 생각보다 아주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내리기 전에 다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이번엔 반드시 타월을 목에 걸고 가 보고 싶네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5/09/04 00:26
엔딩 크레딧 보니 '그 장면'에서 라이트 세이버 효과음을 빌렸다고 명시되어 있더군요!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5/09/04 00:30
렉스님도 보셨군요. 루카스필름의 협조:-)
Commented by EST_ at 2005/09/04 00:43
렉스// 앗 전 미처 못 봤는데!
전 보곤 성인들 목소리 연기에 '리그 오브 젠틀맨'이라고 씌여있는걸 보며 또 혼자 킥킥거렸지요.^^

계란소년// 라이트세이버의 새로운 효용가치가 증명된 장면이었죠^^
Commented by 나른한오후 at 2005/09/04 14:49
흐어...예고편만보고 웰메이드겠다 싶어 무척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딘지도 모를 개봉관에서 단관 상영이라니...소식듣고 좌절해 버렸습니다....결국엔 못봤네요 전...ㅡ.ㅜ 아니 저정도 영화가 어쩌자고 단관개봉을....
Commented by EST_ at 2005/09/04 23:35
나른한오후// 필름포럼은 구 허리우드 극장입니다. (탑골공원과 인사동 초입 사이에 있는 낙원상가 건물에 있는 극장이요)예전에는 종로 쪽이 개봉관의 메카였고 저역시 중학 시절엔 허리우드 극장에서 많은 작품들을 건졌었던지라,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극장입니다. <고스트 버스터즈>나 <스타워즈 3- 제다이>, <쏘울 맨>, <이집트 왕자>같은 영화들을 허리우드에서 보았지요.
현재의 필름포럼이 아트씨네마 영화관 계열인데다 제가 보니 객석도 꽤 찰 정도로 호응도 있는지라, 아마 달랑 한주만 걸고 내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다음주까진 버텨줄 듯 하니 시간 되시면 한번 노려보세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Commented by 로오나 at 2005/09/05 10:01
순수한 마음호의 작동원리는 본래는 영화에도 삽입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오면서 수입사측에서 잘라버렸지요. 그 건으로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EST_ at 2005/09/05 13:31
로오나// 삭제되었다는 부분이 그쪽이었군요. 그 외에 주인공들이 죄다 털실인형으로 변한 부분의 스틸 컷을 보았습니다만...
상영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이유였다면 저도 마구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얘기를 들어 보니 수입사 측에서도 아니라고 하는 걸로 보아 은근슬쩍 해당 부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단관 개봉이라도 이게 어디냐 하는 생각도 들고, 중간 필름이 없어진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개봉할 정도의 가치없는 영화도 아니라는 데서 오는 허탈감 같은 것도 들고 이래저래 묘한 기분입니다.
Commented by 天照帝 at 2005/09/10 00:07
아... 트릴리언의 석방명령서를 제출할 때 뒤에 서 있던 로봇 말씀입니다만...
그게 BBC TV시리즈판의 마빈이라는군요. 저도 오늘 이글루에서 들었습니다. ^^;
Commented by EST_ at 2005/09/10 00:25
天照帝// 아... 그런가요? 전 TV판의 디자인을 차용해 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실은 삭제장면 확인해본답시고 동영상을 구해놓은지라... 극장에서 뭔가 두둑거린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2~3분정도 잘렸더군요)
Commented by THX1138 at 2005/09/13 00:01
또 볼거예요~~
Commented by EST_ at 2005/09/13 09:23
THX1138// 연장상영이 결정됐다고 하더군요. <오픈 워터>같은 저예산 영화를 블록버스터처럼 위장해서 개봉할 여력이 있는 나라에서(오픈 워터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 홍보방법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건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수입사의 잘못이죠) 어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이리 홀대받는지 전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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