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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어느 조회에서인가 '서울역 압사 사건'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난다. 질서의식 고양을 위한 인용이었을 만큼 다소 감정적으로 윤색이 된 내용이었지만 묘사된 사건의 정황이 하도 처참해서 사십여년이 넘게 머릿속에 두고 있던 사건인데, 다시 찾아보니 1960년의 일이고 30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1세기에 그 몇배에 달하는 끔찍한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갈래로 뻗는 생각은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하다. 이게 무엇무엇 때문이다 누구 탓이다라고 단순하게 접근할 수도 없다. 지금은 그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 
by EST | 2022/10/31 12:06 | ▶◀ | 트랙백
프레이- 2022.08.05. CGV 용산 (시사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혹 미리니름이 될 수도 있으니 유의바랍니다)

종종 하는 이야기인데, 누구나 알고 굉장히 유명한 영화 혹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론 이상하리만치 인연이 없는 경우가 제법 있다. 내겐 '프레데터'도 그런 케이스로, 에일리언 시리즈는 그럭저럭 극장에서 관람을 좀 한 반면 유독 프레데터 시리즈는 한편도 극장에서 볼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OTT 오리지널인 <프레이>를 극장에서 관람한 것은 여러가지로 의미있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중학생 때 이야기를 좀 하자면, 반 친구 여럿이 어떤 영화를 보고 왔는데 한 친구가 유독 불만을 표했더랬다. 예고편을 통해 굉장한 액션영화를 기대하고 갔는데 갑자기 웬 괴물이 튀어나오고 개연성도 엉망인 이따위 영화가 어디 있냐며 화를 내는 통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존 맥티어난의 <프레데터> 이야기다. 지금이야 에일리언과 더불어 헐리우드 상업영화가 낳은 양대 크리쳐로 대접받고 있는 프레데터이건만, 그때는 <코만도>를 보려는데 난데없이 끼어든 근본 없는 괴물 취급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뭐든 시작이 있기 마련이고 지금에 와선 그 이상한 영화가 일종의 '근본'이 되었지만.

태생적인 배경부터 미래인 에일리언이 기원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불쾌한 요소의 집대성과 그 존재 자체로 근원적인 공포를 안겨준다면 프레데터는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포지션으로 캐릭터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현대의 지구를 무대로 선택하여 인간을 '사냥감'의 위치에 둔다. 어디서 왔는지 왜 이러는지도 모르는 '포식자'가 인간을 사냥하고, 표적이 된 인간이 열세를 극복하며 어떻게든 살아남는 '서바이벌'이 프레데터 시리즈의 근간을 구성한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이>는 프레데터 시리즈가 갖고 있는 고유의 날것스러움에 집중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300여년 전의 미국을 무대로 원주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한층 원초적인 대결 구도를 만들었는데, 여러모로 인간이 가진 열세를 부각시키고 오리지널의 정글과 비슷한 호흡을 자아낸 점이 좋다. 이것은 그 위상과는 별개로 내겐 어느정도 'B급'의 인상으로 남아있는 프레데터의 캐릭터성과도 연관이 있다. 시종일관 일종의 클로킹 기술로 몸을 숨기다 막판에야 본모습을 좀 보여줬던 <프레데터>에서 받은 느낌과도 맞닿아 있고,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야성'이 그 매력의 원체험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도시를 무대로 했지만 <프레데터 2>는 통제 불가능한 맹수가 도심으로 숨어든 인상이었던 터라 그 본질을 유지했고 '본진'으로 인물들을 소환해서 펼쳤던 <프레테터스>가 원전의 느낌을 어느정도 반영했으며, SF적인 성격이 한층 부각된 AVP 시리즈가 좀 볼만한 킬링타임 영화였고 시리즈 중 가장 하이테크에 다가간 <더 프레데터>가 혹평을 면치 못한 걸 두루 떠올려 봤을 때 <프레이>의 선택은 꽤 영리한 접근이다.

베일에 싸인 존재가 두려운 이유는, 그게 뭔지 알 수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깊이 들어가면 환상이 깨지고 두려움도 좀 가시게 되는 법이다. <에일리언 커버넌트>를 재미있게 봤음에도 좀 낮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굳이 설명할 필요도 따로 정리할 필요도 없는 '기원'을 명확하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덤으로 그게 그렇게 좋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쇼라는 기구한 캐릭터를 거의 능욕하다시피 한 전개는 지금도 납득이 어렵다. 스콧 옹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요즘 상업영화에서 먹힐 만한 요소를 죄다 때려박고도 <더 프레데터>가 엉망이 된 건 그런 이유다. 사냥꾼과 사냥감 그리고 처절한 생존, 이걸로 충분한 시리즈에 세계관 확장이랍시고 그다지 좋지 않은 양념을 끼얹으려다 제 다리에 걸려 넘어졌달까. 존 윅 시리즈의 예를 들자면 오히려 단편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그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정도까지가 딱 좋았던 것과도 상통한다.

<프레이>는 시대와 인물 등을 좀더 날것스러운 쪽으로 집중하는 동시에 시작 부근에 시대를 표기하는 것 외에 그다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중간부터 등장하는 유럽인들과 엮이는 대목에서도 통역을 통한 몇몇 대사 외엔 굳이 자막조차 넣지 않고,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도 어느정도 절제를 하고 있다. '포식자'가 사냥감을 잡고 우리가 보기에(또는 인간의 관점에서) 잔인하게 다루는 현장을 표현은 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노골적이거나 자세하게 보여주진 않는다. 심지어 프레데터의 클로킹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약간의 굴절효과를 모자이크나 블러처럼 활용하는 영리한 처리법도 선보인다. 사냥감을 잡아 껍질을 벗겨 나무에 거꾸로 매달거나 목에 칼집을 내서 척추째 잡아올리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존재하고 사지도 적잖이 날아다니지만 정작 표현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고, 상당부분은 거기서 상황을 유추하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

그럴듯한 설정의 심화나 방대한 세계관 같은 것을 접어두고 본질과 상황(및 그에 따른 인물들의 묘사)에 집중한 덕분에 부감으로 보여주는 방대한 자연의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일견 단출해 보이기까지 하는 작품이 되었지만, 그런 일련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오히려 프레데터 고유의 야성적인 매력이 살아났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대립각도 생기고 관계가 얽히기도 하지만 여성 캐릭터인 나루가 본작의 프레데터와 일대일로 대적하는 것이 주요한 흐름이 되고, 물리적으로 무척 힘에 부치는 것이 확연한 나루가 이런저런 여건을 이용해서 최종적으로는 '피식자가 살아남는' 과정도 무난하게 잘 엮었다. 원전과 원전에 준하는 작품에 대한 오마쥬도 잘 녹여냈고, 화끈하고 대단한 스케일의 액션에 이르진 않았으되 각별하게 신경쓴 사운드의 활용 등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엔드 크레딧의 원주민풍 삽화를 통해 잠깐 나타난 '그것'에 이르면 아이쿠 저걸 어째 싶었는데,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선 후속작을 통해 보여줄 수도 있겠으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상관없다. 적어도 그때 벌어질 일들이 나중의 역사를 바꾸진 않을 테니 이또한 상상과 가정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대단한 성취를 이루진 않았으나 많은 것을 내려놓고 선택에 집중한 결과가 나쁘지 않다.

인지도와 위상에 비해서 정작 '영화' 자체는 그에 준할 만큼 흥한다는 인상을 못 받는 게 프레데터 시리즈인데, <프레이>가 좋은 반응을 얻어 괜찮은 후속 기획들을 끌어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흐름이 아닐까 한다. <프레이>를 보면서 '이렇게 되면 여러 시간대의 여러 환경에서 프레데터와 인간의 대결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더니만, 이미 코믹스 쪽에선 오래전부터 그런 쪽으론 여러가지 시도를 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론 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야성의 서바이벌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자칫 '수트 입은 히어로 액션'이 될 뻔한 프레데터 시리즈의 방향성을 원초적인 야성으로 가다듬었다는 점에서 <프레이>는 큰 성취보다는 준수한 완성도를 안정적으로 추구한 결과물이다. 향후 이 프랜차이즈가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적어도 큰 헛발질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by EST | 2022/08/26 17:16 | 영화관 2020 | 트랙백 | 덧글(0)
기도의 숨결- 2022.08.11. 시네큐브 광화문 (시사회)
특정 종교에 국한된 단어는 아닌데,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 머무르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가톨릭 교회에서는 피정(避靜)이라고 한다. 특별한 절차나 양식이 정해진 것은 아니고 세속의 소음을 차단한 채 내면을 돌아보는 행위라면 기도 명상 때로는 침묵도 모두 피정의 범주에 들어간다. 의미만으로 보자면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 밖의 장소 어디에서든 가능하나 보통은 피정을 위해 마련된 시설이나 수도원 등에서 행해지며, 개인적으로도 가능하고 단체/공동체 단위로도 가능하다.

부끄럽지만 40여년간 신자로 살아온 나 또한 몇차례 피정을 경험했는데, 속세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진정한 의미의 휴식으로 느낄 수도 있겠으나 또 그렇지만도 않다. 여럿이 함께 들어간 피정에서 고작 몇시간 정도 대침묵(피정 형식과 별개로 마련하곤 하는 일체의 대화를 금하는 시간)을 거치는 것 만으로도 꽤나 힘이 든다. 성찰과 침묵에도 어느정도 훈련은 필요한 법이다. 당장 한시간 정도 되는 미사시간조차 집중하는 게 어렵고 심지어는 15분 남짓 걸리는 묵주기도 한번을 할 때도 오만 분심이 다 드는데... 농담처럼 지인들과 '수도자들은 매일이 이런 삶일텐데 대체 어떻게들 사는지 참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기도의 숨결>은 프로방스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들의 일상을 관조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베네딕다라는 수녀의 서원식으로 시작한다. 수도서원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첫 서원인지 종신서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종신서원인 것 같고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봐선 시골 동네의 조촐한 잔치같은 인상도 풍긴다.

정말이지 저렇게나 기쁠까 싶을 만큼 환한 웃음을 만면에 띄운 베네딕다 수녀의 모습을 시작으로 검정 베일을 쓰고 엎드려 부르심에 응하는 등의 서원식 장면이 느릿느릿 흘러간 뒤, 고정된 카메라(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굳이 제대로 잡거나 보여주진 않는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문이기 때문이다) 정중앙에 자리잡은 수녀원 문이 열리고 서원식에 참석했던 동네 사람들이며 식을 집전했을 주교님 등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동안 베네딕다 수녀가 아마도 조카로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뺨에 키스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등 인사를 마치곤 안으로 들어간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수녀원 문이 닫기고 소박한 메인 타이틀이 뜨고 나면, 영화에서 '외부인'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봉쇄 수도원은 아닌 듯 하니 어떤 형태로든 외부와 관계를 맺고는 있을 것 같지만, 조용히 수도자들의 하루하루를 비추는 동안 외부 또는 외부인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로 진행된다.

배제는 비단 사람에 국한된 것 만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고 (식사중에 어느 수녀가 무언가를 낭독하는데, 내용을 들어 보니 일종의 뉴스를 전달하는 듯. TV나 라디오가 아닌 수녀의 목소리로 세상 물정을 전하는 것일 터다), 캔버스에 성화를 그리거나 이콘에 금박을 박거나 나무를 잘라 십자가를 만들고 가죽 끈을 꿰고 트랙터를 몰아 밭을 가꾸고 뿌리작물을 심는 '일상'이 일말의 꾸밈이 없이 그저 담담하게 흘러가는 동안, 마땅한 나레이션이나 BGM조차 없다.

종종 흘러나오는 수녀들의 기도소리는 그 자체로 음악이 되고, 악기 역시 성가 반주에 사용되는 오르간과 보이지 않는 어떤 현악기(하프 비슷한 음색을 내는데 정황상 하프는 아닌 듯)를 제외하면 피아노조차 기도의 첫 음을 잡는 정도의 용도로만 사용된다. 가톨릭 기도문 특유의 가락이 담겨있는 기도를 다함께 바칠 때는 여성 특유의 음색이 다소 높게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실로 조용하고 차분하다. 기도하고 일하고, 묵상하고, 노동의 결실을 먹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수녀들의 일과 동안 너른 풀밭에 의자로 라인을 긋고 공을 던지며 깔깔거리는 피구 장면이 고작해야 이 영화에서 제일 떠들썩한 장면이다.

영화는 수도생활의 면면을 조용히 응시하면서 어떤 해석도,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으며, 심지어는 여기가 어느 나라의 어느 수도회라는 설명조차 해주지 않는다. '체험'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겠지만, <기도의 숨결>의 120여분 러닝타임은 수도생활 그 자체를 느끼는 시간으로 기능한다. 일견 세속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신에게 귀의하는 삶이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고 기꺼운 마음으로 수도생활을 선택한 분들의 기쁨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순간 꾸밈없는 민낯과 청빈에 근거한 수녀들의 얼굴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기 시작할 때쯤이면 그다지 멋스럽지 않은 화면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종일관 덤덤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몇번인가 해가 지고 해가 뜨고를 반복하다 마지막엔 해뜰 무렵의 수도원 전경을 잠깐 비춰주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고작 두시간 남짓이었을 따름인데, 여느 영화관람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다르다. 밖으로 나와 조용한 여운을 곱씹으며 잠시 길을 걷고 늦은 저녁을 챙겨먹는 동안 다시금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새삼 내가 굉장히 시끄러운 세상에 속해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 수록 내가 살아온 인생이 어떤 의미였을까에 대해 다소 침울하게 돌이켜보곤 하는 시기에, <기도의 숨결>은 모처럼 잠깐이나마 피정에 들어간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좋은 영화와의 만남에 초대해준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린다. 내겐 아마도 마지막일 시사회 감흥을 다시 정리하면서 보니 이 얼마나 얄궂은지.
by EST | 2022/08/21 04:55 | 영화관 2020 | 트랙백 | 덧글(0)
Get truth 태양의 엄니 더그람- 오타가키 야스오
지구인 주인공이 속한 게릴라 조직이 식민행성 데로이아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내용의 <태양의 엄니 더그람>은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을 떨친 타카하시 료스케 감독의 1981년작입니다. 75화로 완결된 이 작품은 80년대 리얼로봇 계열 중에서도 타카하시 감독의 다른 작품인 <장갑기병 보톰즈>,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전투메카 자붕글>과 함께 '선라이즈 리얼로봇 3부작'이라 따로 분류도 할 만큼 진지한 드라마입니다. (주: 우리나라에선 '다그람'이 일반적이긴 한데, Gundam과 마찬가지로 Dougram이라는 영문 이름에 근거해서 전 '더그람'이라 쓰고 있습니다)

<문라이트 마일>과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로 유명한 오타가키 야스오가 더그람을 가지고 2021년부터 새로이 만화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 < Get truth 태양의 엄니 더그람>입니다. 팔 쪽의 문제가 심각해진 작가가 스스로 '더이상 전같은 그림은 그릴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히며 그림체를 바꾼 것에 대해 양해도 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히 과거에 비해 그림체가 상당히 거칠어졌으나 필력은 여전하고 Umegrafix라는 채색팀이 함께 밀도를 높이며 풀 컬러판으로 완성하고 있습니다.
전 맥스팩토리의 1/72 플라모델이 동봉된 초회특전판을 구해서 갖고 있고, 같은 회사의 COMBAT ARMOR MAX 라인업과는 살짝 다른 제품적 접근이 상당히 좋습니다. 오오카와라 쿠니오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층 세련되게 다듬으면서 공작기계의 인상도 적절히 녹여넣었어요. 앞서 언급한 선라이즈 리얼로봇 3부작 디자인이 여느 리얼계보다 좀더 기계나 병기의 측면을 강조했는데 세 작품 모두 큰선생께서 관여했다는 점도 재미있군요.
1권은 정계를 손에 쥐고 있는 대부호 가문의 아들 크린 카심(주인공)이 식민행성 데로이아에서 게릴라 독립운동에 참가한 상태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크린이 원래부터 반동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지구인 최상위 기득권층의 신분을 버리면서까지 데로이아 게릴라에 참가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구측이 자행한 대량학살을 목격한 일입니다. 민간인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말이 구덩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거대한 규모입니다. (사진의 컷에서 저만치 보이는 컴뱃 아머의 높이가 약 10미터쯤 되는 걸 감안하면 해당 컷에서 묻고 있는 시체만 해도 족히 몇천 단위는 될 겁니다) 극의 배경이 되는 이런 이야기는 중간중간 회상 같은 형식으로 삽입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의 교전 과정에서 불구가 된 트래비스와 아우라라는 2인조의 관점이 큰 줄기인 점에도 눈길이 가는데, 응전하지 않으면 굳이 목숨까지 빼앗진 않는 크린의 노선과는 별개로 이들이 보이는 타오르는 원념의 감정 표현 또한 인상적입니다. '전쟁에서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자기 죄를 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같은 다른 관점에서의 질타는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잘못된 길을 이번 세대에서 끝내려는 해방전쟁'의 대의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원한과 증오의 루프처럼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사실 뜬금없이 이 오래전 로봇을 떠올린 것은, 오리지널부터 본작에까지 이어지며 <태양의 엄니 더그람>을 상징하는 이 문구 때문인 것 같습니다.

'Not even justice, I want to get truth.'
by EST | 2022/08/19 01:05 | 서적/미디어 | 트랙백 | 덧글(0)
오비완 케노비(1,2화)- 2022.06.08. 메가박스 코엑스(시사회)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1권에 이미 수만년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연표'를 먼저 펼쳐놓고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간중간 설정이 바뀌거나 곁가지를 치는 등의 변화는 있었으나 독자 제위는 이미 수십년도 전에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다 알고 있는' 입장이 되어 그 전개를 지켜보고 있는 흥미로운 상황 또한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인 셈이다.

'알고 본다'는 예시로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언급한 것인데, 그런 면에서 프리퀄의 대미를 장식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마지막은, 내겐 무척이나 강렬한 울림의 결정적 한방이었다. 선량한 이들이 패하고 잔인하게 도륙당하는 가운데, 오해와 애증의 가파른 감정선을 지나 도착한 마지막 장면에서 오비완 케노비는 조용한 타투인의 사막을 건너 갓 태어난 루크를 오웬과 베루 부부에게 안겨주고, 이 순박한 부부가 아이를 안은 채 두개의 석양을 바라본다. '스타워즈를 보는 순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면 시퀄은 몰라도 프리퀄과 클래식은 무조건 영화 나온 순서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단언하는데, 그 유명한 'I am your...'와 이 장면은 이야기 순서대로 봐선 제 감흥을 느낄 수 없다.

프리퀄의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관람 당시에 적었던 글을 굳이 다시 찾아볼 필요조차 없을 만큼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저 착한 사람들이 맞이할 비참한 최후를 알고 있었으니까.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을 지상파 TV를 통해 처음 접한 내가, 당시엔 삭제처리된 시골 부부의 불붙은 시신을 먼 훗날 확인하곤 그야말로 기겁을 했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인 <오비완 케노비> 감상을 적으며 <파이브 스타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좀 장황하게 과거의 기억을 주워담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히 알고 있는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이 이야기가 설령 화끈한 활극과 더불어 아주 흥미진진하게 흘러갈지언정 작품에 흐르는 큰 줄기는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회한이나 애잔함에 기반을 두고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다이의 몰락과 함께 사막의 모래 속에 은신한 채 '새로운 희망'을 조심스레 지켜보는 오비완이 타이틀 롤이니 당연한 것이고, 오비완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큰 역사가 바뀔 리 없으니까. 아닌게아니라 여는 장면 자체가 오더 66으로 학살당하는 제다이들을 뒤로 한 채 어린 파다완들이 도망치는 대목이다. 집 문가에 올라가 조종사 흉내에 여념이 없는 어린 루크는 영락없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협>의 아나킨을 빼다 박았고, 어린 레아가 성장하고 있는 앨더란의 아름다운 풍광은 빛이 나면 날수록 먼 훗날 한순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기에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런 이유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전개보다는 일말의 애틋함이랄까 하는 걸 기대하며 관람한 <오비완 케노비>의 초반 2화분은, 만족스러운 한편 걱정스러움도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제다이의 긍지와 본성을 숨기며 오로지 '새로운 희망을 지켜보는 임무'에 자신을 내맡긴 채 추레하게 살아가는(자와한테 '너 냄새 지독하다'는 소릴 들을 정도니...) 오비완의 현재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반갑고, 시퀄 삼부작이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클래식 시리즈에 대한 오마쥬와 우아한 카메라는 훌륭하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 불안함이 엿보이는데, 특정 연출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많은 후기에서 보이는 '도망 장면'이 대표적인 예로, 아역이 너무 어린 탓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레아라는 캐릭터를 아역에 잘 반영한 점과 좋은 연기와는 별개로) '세번째 자매' 리바가 높은 곳에서 총격전의 징후를 찾아내고 그쪽으로 향하는 장면은 상당히 스피디하고 스타일리쉬한 연출로 묘사했지만, 이상하다. 점프와 포스를 이용하며 멋지게 달려는 가는데, 그게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합이 신통치 않다. '저거 하려고 온갖 폼을 다 잡고 저렇게 뛰어간거야?'라는 인상... 한마디로 장면 설계가 좀 별로라는 이야기인데, 화끈한 장면이 많이 나올 일이 없다손 치면 액션 장면은 스토리와 관련지어서도 좀 인상적으로 연출을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세번째 자매인 리바를 언급한 김에 밝혀두자면, 이 새로운 인물에 꽤 비중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 역력하나 캐릭터는 좀 겉돈다는 인상을 받았다. 눈썹 하나 까딱 않고 행성을 날려버리는 타킨 대총독 같은 분이 존재하는 반면 그 묘사에 있어서는 상당히 담백한 게 스타워즈였다. 행성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며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사람이 죽는 것이 감성적으로 전달은 될 지언정 시각적으로는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세계다보니, 언행 모두 날것스럽고 매우 거침없는 리바는 음식으로 치면 굉장히 자극적인 MSG같은 느낌이고,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기 전에 거부감부터 먼저 들게 만드는 것 같아 그 비중상 향후 어떻게 다룰지 기대보단 걱정이 좀 된다.

원전에 대한 존중과 오마쥬라는 차원에서 옹호가 어려운 시퀄 삼부작(내가 새로운 시대를 긍정하려고 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아무리 좋게 봐도 소위 실드를 칠 수 없는 건 없는 거니까)의 거대한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보편적인 '스타워즈'의 세계를 일견 소소한 데서부터 매력적으로 되새기고 있는 일련의 드라마 시리즈의 행보와 스타일은 <만달로리안>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스타워즈 스토리' 라인업과 <오비완 케노비> 같은 드라마는 프리퀄이나 미싱 링크에 해당하고 기실 이런 영역은 EU가 확실히 관리되던 시절에는 동인물의 영역에서나 건드릴 만한 소재였지만, 이제 디즈니가 모든 걸 레전드로 돌려버리고 새로운 캐넌을 만들어가는 현 시점에서 <만달로리안>의 성공에 고무되어 일찌기 다루는 것 자체를 터부시했던 지점(예를 들면 한 솔로와 츄바카의 만남 같은 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고 들었다)까지 꺼내들 요량이라면, 모쪼록 좀더 세심하고 우아한 태도를 고수해 주었으면 한다. 스타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지만 기실 사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즐기는 세계이기도 하니까. (얄궂게도, 이건 앞에서 언급한 '결말을 알고 본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장희빈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누구나 알지만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흥미진진하게 보는 것과 같은 걸지도) 그리운 인물들이나 정겨운 풍경들을 그저 투사하는 정도로 오랜 팬덤에 교태를 부리는 선에서 끝낼 게 아니라, '그래, 이게 스타워즈지'라는 정서적 울림을 잘 잡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대한 몰락의 뒤안길에서 모래바람 속에 여생을 묻었던 오비완이야말로 비장의 카드임과 동시에 양날의 칼 아닌가. 3화 예고에서 아버님 소환을 알리고 있기에 붙이는 사족인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다스 베이더는 그저 불러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한 게 아니다. '잘 다뤘기' 때문에 환호한 거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본다는 건 여전히 내겐 그 자체로 즐겁다. OTT로 공개된 작품을 큰 화면에서 볼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한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린다. <오비완 케노비>를 보면서 희망보다는 걱정 쪽이 좀 더 크긴 하지만, <만달로리안>의 그것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작은 성공을 거두어 가며 착실히 위상을 회복했으면 한다. <만달로리안>에 대한 호응을 두고 친한 후배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스타워즈 팬들은 너무 오랫동안 고통받았어."
by EST | 2022/08/18 22:43 | 영화관 202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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